최형란<주부>
너, 그 몸뚱이로 한국 들어 올 생각하지 말아라. 요즘 한국 여자들이 다들 가꾸어서 얼마나 이쁘고 날씬한데… 국제전화로 친정엄마는 늘 내 살 걱정을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전에 엄마 눈에는 나름대로 괜찮게 보였을 하나뿐인 딸이, 미국에 가자마자 살이 쪄서 뚱땡이가 되어, 양손에 아이 둘 하나씩 잡고 지친 얼굴로 집에 들이닥치는 게, 안쓰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실망해 하는 눈치시다. 나는 가끔, 계속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이렇게 살이 찌지는 않았을 거라고 억울해한다.
한국에서 살 때, 나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어도 마른 편에 속했었다. 매일 지하철만 타도 계단 오르고 걷는 양이 많아서 칼로리 소모가 쉽게 되었는데, 여기선, 밖에서 손쉽게 먹는 음식도 칼로리가 높고, 또 일부러 시간 내어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해줘야 체중이 유지가 된다. 그래서, 헬스클럽에 가면 큰방 가득 뚱뚱한 사람들이 가득 모여서 다들 살을 빼기 위해 헉헉대며 몸부림을 친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땀을 흘리는 모습들이 너무나 괴로워 보여, 무엇인가 운동말고도 분명 살을 쉽게 빼는 방법이 있으리라 나는 굳게 믿었었다. 그래서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온갖 가루도 먹어봤었고, 순전히 먹는 것을 줄여서 15파운드 가량 뺀 적도 있었는데, 조금만 먹어도 요요현상이 와서 지금은 도로아미타불이 된 상태이다.
또,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시각적으로 자극 받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길거리에 나가면 다들 날씬하고 말랐으면 자극을 받을텐데, 이곳은 밖에 나가도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다들 타인에게 무관심하며, 설상가상으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뚱뚱하다. 그리고, 연년생 아이둘 키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육체적으로 힘이 들거나, 가족이 그립고 외롭다거나 하면, 이 모든 한을 먹는 걸로 푸는 버릇이 생겼다. 하여간 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 할수록, 시련이 닥치면 닥칠수록 찌는 스타일이다.
요즘 나는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면, 일주일에 세번씩 땀을 흘리고 운동하면서, 이제서야 그 동안 방치했었던 살들을 빼기 위한 전쟁을 하고있다. 몸에 불필요한 지방을 달고 살아가는 것은 버겁다. 하물며, 마음에 쓸데없는 지방을 매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아주 오래 전에 누가 내게 상처준 말 한마디로 아직도 힘겨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속상해하면서도 자꾸 되새기며 그 사람을 미워하며 혼자 화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몸의 지방을 빼면서 마음의 지방도 함께 이 기회에 빼고, 내년에는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가을을 맞겠다고 다짐해본다. 나도 한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