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중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파리의 연인’에서 멋쟁이 재벌 2세로 나왔던 박신양이 망나니 사기꾼으로 나온 영화였다.
영화는 사기 전과로 출소한 주인공이 흥미로운 사기 사건을 계획하고 공범들을 끌어 모으면서 시작된다. 소위 그 분야의 최고 ‘꾼’들 다섯 명이 팀을 이뤄 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은행 사기 극을 꾸미는데, 표면적으로 결과는 실패. 미스터리만 남는다. 공범들은 배신감과 의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추적하고 영화는 그 과정을 통해 범죄 모의 배경과 과정을 재구성하면서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매년 연말이 되면 365일이라는 길고 긴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흘러갔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 사기 극 같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야 없겠지만 그 긴 시간이 어떻게 종적도 없이 사라졌는지는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웃고, 울고, 한숨 짓고, 짜증내고,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 하다 보니 1년이 지나갔다. 그 1년을 ‘재구성’해보면 우리의 삶도 갈피가 잡히지 않을까.
우선 미국인 시간활용 조사(ATUS)라는 통계를 보면 1년 중 우리가 움직이고 활동한 시간은 8개월에 불과하다. 미국민들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2003년 인구 조사국이 실시한 ATUS 결과에 의하면 연중 4개월은 잠자는 시간이다.
그리고 직장일 하는 시간이 최소한 4-5개월 될 것이고 보면 우리가 ‘내 시간이다’하고 쓸 수 있는 시간은 3-4개월 정도. 그 시간 중 여가 활동으로 가장 많이 소요되는 것이 TV 시청인데 무려 6주일이다. 하루 24시간씩 6주 내내 TV를 본다는 말이 된다. 평균 운동 시간은 4일 반 - 비만 인구의 지속적 증가라는‘미스터리’는 여기서 풀릴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하루를 재구성하는 조사도 있다. 프린스턴 대 심리학과의 다니엘 카너먼 교수 연구팀은 개개인 혹은 사회의 행복도를 측정하기 위해 ‘하루의 재구성’이라는 방법을 도입했다. 조사 대상자들에게 전날에 한 일을 순서대로 적고 각 에피소드의 시작 시간과 끝난 시간,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느낌을 적게 하는 방법이다.
과학 저널 사이언스 12월호에 발표된 논문은 자녀 양육 연령층인 30대 후반 여성 900여명을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에 의하면 가장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 즉 즐거운 일은 친한 사람과 만나기, 사교활동 그리고 휴식. 반면 가장 부정적으로 여기는 일, 즉 힘든 일은 출퇴근, 직장근무, 그리고 아이들 돌보기.
그런데 3대 즐거운 일을 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42분인 데 비해 힘든 일에 드는 시간은 9시간 30분 - 사는 게 왜 고달픈지‘미스터리’가 풀리는 대목이다.
새해를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난 한해를 ‘재구성’해본다면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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