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축구대표팀이 제 10회 미주체전에서 결승에 오른 것은 내가 조기축구연합회를 창설한 91년 제6회 대회 이후 처음 있는 경사였다.
만약 여기서 우리가 오렌지 카운티팀을 꺾고 우승하면 미주 대표팀 자격으로 대한민국 전국체전에 참가하게 된다.
이몽룡의 금의환향 같은... 뭐 그런 비슷한 기분 한번 접하는 순간인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협회 금고는 비어 있는데 그 막대한 비용 조달은? 생각이 이에 미치자 꿈은 여지 없이 깨어지고 만다. 일장 춘몽이다.
이웃 마을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지구 한바퀴를 돌아오는 수만리 길에 뿌려야하는 경비가 자그만치 5만여 달러다. 한국정부나 체육단체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생색내는 것은 고작 사탕값 뿐, 그것도 형편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들쑥 날쑥이다.
그러니 이처럼 막대한 비용은 순전히 자비일 수 밖에 없고 그러자면 많은 사람 주머니를 반 강제로 털어야 하는데 이거야 말로 백주에 벌이는 날강도 짓 아닌가. 내 어찌 축구협회장이기 전에 종교인 신분으로 감히 이런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 말고도 우승에 대한 내 갈등이 ‘우승하면 안된다’는 부정적 생각으로 급선회하게 된 데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따로 있었다.
돈, 돈 하다가 하루 아침에 타락하고 강도 사기꾼 다 되었다 치자. 그렇게 몹쓸 짓 해서라도 본국 체전에 참가할 만한 값어치가 정말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연코 아니다. 이것은 내가 평소 미주체전 우승팀의 본국에 참가한 역대 사건을 수집 종합해 보고 여론을 수렴한 결과 얻어낸 확실한 결론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번외경기(番外競技)’라는 네 마디의 요상한 글자 속에 내가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들어있다.
범 민족적 대 잔치에 해외동포들을 무시할 수는 없고 초청은 했지만 안채는 집안 손님들을 모셨으니 그렇고 저만큼 떨어진 사랑채에서 부스러기 상이나 받고 가든지 말든지 하는 게 바로 해외 동포 체육인들이 고향에서 대접받는 번외(순서에 없는)라는 것이다.
그래서 메인 구장이 아닌 변두리 중고등학교의 풀 한포기 없는 맨 땅에서 해외 동포들끼리 먼지만 날리는 이상한 경기를 하는데 그런 인기없는 번외경기에도 구경꾼은 있다.
정부에서 강제로 동원한 인근 중학교 여학생들이 외쳐대는 앵무새 소리다.
‘미국 이겨라!’ ‘일본 이겨라!’
그 불쌍한 어린 학생들 손에는 태극기와 만국기가 들려 있다. 이게 바로 해외동포들이 까맣게 모르고 있는 번외경기의 실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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