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기관 ‘코코(CO CO)’의 대표 전선덕(53. 베이사이드 거주)씨는 아들의 장애를 희망으로 승화시킨 한인 어머니다. 그의 인생은 듣고 보면 너무나 힘들고 고달펐으나 이제는 태양이 밝게 떠오르듯 오직 희망만 기다리고 있다. 장애 아들을 돌보다 보니 다른 장애자들도 돌봐야겠다는 생각에서 7명의 부모들과 함께 만든 코코가 앞으로 머지 않아 장애아들이 24시간 내내 서비스 받을 수 있는 복지 홈을 갖는, 그런 꿈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기 때문이다. 코코는 뉴욕에서 장애 아동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유일한 기관.
그는 복지홈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몹시 바쁘게 지낸다. 생계 및 코코 운영 자금마련을 위한 가게 운영하랴, 장애인 아들 돌보랴, 또 코코의 장애아들 28명을 돌보랴, 매일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생활이 분주하다. 그의 하루 시작은 새벽 3시에 기상, 4시경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테리아(맨하탄 형사법원 내)로 부지런히 달려간다. 하루 판매할 콜 캇 음식을 준비한 후 직원이 6시에 도착하면 6시 반부터 가게문을 열고 낮 2시경까지 정신없이 일한다.
그리고 나서 쉴 틈도 없이 또 가게에서 나와 차를 몰고 플러싱 자신이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기관 코코를 향해 달려간다. 매일 2시 반부터 6시까지 오픈 되는 플러싱 장애아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순복음 뉴욕교회 내)에서 장애인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다. 이 일은 전씨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장애자인 아들을 돌보다보니 자연 장애기관에 몸담게 되면서 이제는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거의 천직인 듯 싶게 여기고 매일 헌신 봉사한다. 끝나면 또 장애인 버스를 타고 오는 아들 김하영(25)군과 같은 시각에 집에 돌아와 그를 보살피며 이 것 저 것 마무리한 후 잠자리에 드는 것이 그의 하루다.
결혼 후 전씨의 제 2 인생은 어쩌면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라고나 할까, 거의 숙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첫 아들 하영군을 나면서부터 전씨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76년도 미국에서 한국을 잠시 방문한 한 대학생을 만나 공부를 끝낸 그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같이 미국에 오면서부터 전씨의 인생은 그야말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5개월 2주만에 조산으로 난 아들에게 불행히도 뇌출혈이 생겨 신체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몸의 모든 부분이 장애를 안고 있었다. 출산시 하영군의 몸무게는 1파운드 9온스, 전씨에게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벼락이었다. 그러나 전씨는 운명이라고 탓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현실이 무거웠다.
아들 하영 군은 태어나자마자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4개월, 이후에는 장애아동들만이 기거하는 베이사이드 소재 세인트 메리 아동병원에서 11살까지 목에 기계를 달고 살았다. 하영 군이 목 부분에 달고 있는 기계는 태어날 때 너무 어려 숨쉬는 부위가 너무 적기 때문에 고른 호흡을 돕기 위함이었다.
나이가 들면 신체의 모든 부분이 다 자동적으로 따라 커야 되는데 하영 군은 그렇지가 못해 숨을 쉴 수 있도록 호흡기안에 플라스틱 튜브를 달아 그걸 통해 이제까지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튜브는 가래가 계속 끼기 때문에 자주 청소를 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달고 있는 기계는 가래를 삭히지 못해 튜브의 가장자리가 마르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목에다 물을 달고 있는 컴플렉서 기계를 통해서 수증기를 만들어 계속 목에 공급하고 있다.
그런 하영 군을 전씨는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호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11살 때까지 병원에 있는 아들을 전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말에 데려와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전씨는 ‘이머전시 케어’ 교육을 6개월이나 받았다. 그리고 또 요구되는 자격시험도 보았다. 그 때서야 전씨는 아들을 주말에만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만큼 하영 군의 상태는 심각했다. 때문에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과 시험을 받고 통과해야만 하영 군과 같은 아이를 아무리 부모라도 돌볼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함께 교육받은 남편은 시험에서 떨어져 언제나 아이를 데려갔다 데려오는 것은 전씨만이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네가 잘못했다 하면서 점점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물론, 아내인 전씨를 구타하고 집안의 물건도 부수기가 일쑤였다. 날이 갈수록 이런 상황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전씨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9년 전 남편과 이혼, 혼자서 두 아이 양육을 도맡으며 5년 전부터는 자신이 아이를 돌보다 알게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장애자 부모와 연대, 장애인 돕기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
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코코다.
여기까지 올 때까지 전씨는 거의 매일 울면서 살았다. 11살에 아들을 집에 데려왔지만 뇌출혈로 머리가 커서 고개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기지도, 걷지도 못했다. 거의 13살까지 누워서 우유 병이나 빨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전씨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고개를 가누지 못해 휠
체어에 앉을 때도 양쪽에 기둥을 세워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그 기둥 안에 꼭 맞게 고정시키고 겨우 앉을 정도로 하영 군은 거의 움직일 수 있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씨는 언젠가 집을 방문한 한 한인간호사(장애인의 어머니)가 부모가 노력하면 아이가 걸을 수 있다라
고 한 말을 기억하고 죽기 살기로 아들을 걷게 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노력했다.
방법을 일러준 그 간호사도 자신의 아이를 걷게 하기 위해 양손에 다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서 있는 훈련도중 아이가 넘어지면 자꾸 가서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전씨는 그걸 보고 자신도 가죽 자켓을 오려 아이의 무릎 양쪽에 대고 아이를 엎드려 놓고 계속 팔을 당기면서 기는 연습을 시켰다. 그런 노력을 하다보니 하영 군의 상태는 집으로 온지 4개월이 되면서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전씨는 아들을 집에 데려와서 휠체어를 하루밖에 태우지 않았다. 장애학교에서는 휠체어 타기를 계속 요구했으나 전씨는 아들을 걷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죽어도 태우지 않았다.
그 결과 병원이나 주위에서 모두 놀랄 정도로 그의 아들은 기기도 하고 벽을 짚고 일어서게 까지 되었다. 그러더니 13세부터 조금씩 걷기 시작, 이제는 걸어다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걷는다. 물론, 먹는 것은 아직까지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래도 전씨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그간 고생은 많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모두 보람이고 기쁨이었다. 한 때는 전씨도 운동을 무척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 때문에 너무나 창피하고 또 우울증도 심해 밤마다 울었는데 이제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코코 운영을 할 수 있도록 5년 전 장소(지하교실 7개)를 제공해준 순복음 뉴욕교회 김남수 목사가 하나님은 그래도 감당할 만큼 시련을 주셨다고 말하면 전씨는 막 화를 내면서 하나님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아들을 주셨는가 따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들이 오히려 날 잡아준 것 같다며 그 애가 있다는 게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전씨는 처음 미국에 와서 봉제공장에서 바느질 몇 년 하다 이후 남편과 같이 또 잡화가게를 하다가 다시 혼자서 현재의 카페테리아를 운영하며 고생도 많이 했다. 15년간 시어머니도 모시면서 전씨는 당시 하루에 거의 2시간씩만 자면서 살았다. 그런 노력으로 인해 하영 군은 아직까지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남이 하는 말은 다 알아듣고 묻는 말에 예스, 노우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특별히 고마운 건 올해 세인트 존스 약대에 입학하게 되는 딸 송이(18)양이 늘 오빠를 많이 도와주고 아무런 부끄럼 없이 친구들도 자주 집에 데려오면서 우리 오빠는 천사다 하며 소개할 정도로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 더욱 위안이 되었다고 한
다. 전씨는 이제 모든 시련을 딛고 일어나 장애인 부모들이 하루속히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복지 홈 마련을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뛰고 있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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