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으로 세도나 관광길에 나섰다. 세도나는 기가 많이 모인 곳이라 하여 관광객들이 기를 받으러 모여드는 곳이다.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바람과 구름을 뒤로하며 애리조나 사막을 달려간다. 노란 들풀이 목마름에 지쳐 긴 허리 접고 누워있고 자슈아 나무만이 사막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흰 꽃을 매달고 지나는 길손에게 손을 흔든다.
바라만 보아도 갈증으로 목이 타는 모래 벌판. 폭염이 쏟아지는 사막 가운데 한 마을이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인디언 보호구역 호피 마을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집 구조가 비슷한 이동식 목조 건물이 선인장 가시밭 사이로 듬성듬성 마을을 이루고 있다. 조상으로부터 이어 받은 땅과 재산을 빼앗기고 록키 산맥을 넘어 황무지인 유타,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사막 땅으로 쫓겨난 인디안 부족의 후예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있다.
그 옛날 이 마을에는 김복순 이란 한국여성이 살았다고 한다. 16세 어린 나이로 미군과 결혼하여 태평양을 건너 와보니 남편은 인디언이었다. 복순씨는 언어의 장벽과 이질 문화 속에서 겪어야 했던 소외감과 외로움을 홀로 삭이며 고향의 부모형제를 한번 만나러 가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가내 공업으로 은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인디언들은 은을 행운의 여신이라 하여 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몸에 걸치는 것을 즐겨한다. 복순씨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호피 주얼리 라는 상표로 제품을 생산하였는데, 외부로부터 주문이 쇄도하여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복순씨는 폐암 선고를 받고 병마에 시달리다가 40세 젊은 나이로 한많은 생을 마감하였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우리 모두는 눈시울을 붉혔다.
맑고 파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낙비가 쏟아진다. 주룩 주룩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는 인디언 영혼들의 절대 자유를 갈망하는 외침으로 들려온다. 길섶에 무리 지어 핀 노란 해바라기가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한다
꺾어질 듯 비틀거리며 비바람에 몸부림치는 노란 얼굴들. 어쩌면 저 꽃들은 한이 서린 인디언 영혼들의 환생은 아니었을까.
자연은 또 다른 새로운 모양으로 다가선다. 높고 푸른 숲이 우거진 참나무 계곡이 우리를 맞아준다. 일명 아리랑 선불동 계곡이라 하여 높은 산허리 절벽엔 몇 백년 세월동안 풍상으로 마모된 갖가지 돌 형상을 누군가 만물상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마침내 세도나에 들어섰다. 환희와 탄성의 외침은 멈출 줄을 모른다. 세상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 옛날 이곳 세도나 계곡 어디에선가 인디언들 3,000여명을 또 사살하였다니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혼들의 붉은 핏자국이 돌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세도나와 호피 마을에 긴 여운으로 얼룩진 인디언 부족들의 역사를 보고 들으며 돌아서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였다.
박 안젤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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