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연<한국학교 교사>
아침 저녁으로 알맞게 선선하여 날씨에 취해 있기가 참 좋은 때다.
그런데, 이맘때쯤 되면 맥 빠지는 말을 꼭 듣는다.
“어~휴 죽은 깨가 확 생겼네. 머리칼도 부석부석하고 여름을 너무 즐긴 후유증이야 뭐야?”
민감한 피부 타입 때문이라는 하기 좋은 변명으로 이제껏 베이비로션 하나만 바른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했었는데 어느 해 인가 웰빙이란 단어가 유행 하면서, 베이비로션 하나만 달랑 바르는 것은 피부 타입과는 상관이 없는 게으름의 표상이란다.
유기농 음식과 유산소 운동, 요가, 아로마 요법 등으로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며, 피부에 맞는 천연재료 맛사지와 기의 흐름을 잡아 주는 경락 맛사지를 정기적으로 받으면 죽은 깨, 기미는 얼씬도 못하고 얼굴도 조막만해져 미인이 따로 없다는데 일년 내내 그 흔한 콜드 맛사지를 한번도 안하니…
그나마 타고난 피부가 좋아서 다행인지, 이 성격에 피부까지 울퉁불퉁, 뾰죽 삐죽 거렸으면 어찌했으랴!
올해도 변함없이 애정어린 충고인지, 사랑의 질책인지 한마디씩 던진다.
작년보다 한마디 더 추가된 말, 이제는 나이 생각 할 때라고.
기미 쫙 깔리고, 검 버섯 확 피면 죽은 깨 더 살아 난다나?
계속 흘려 보냈는데, 어느날 우연히 한참 들여다본 거울 속에는 깨만 솔솔 뿌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뭉친 깨도 제법 있고, 깨 가루가 흩어져 있음을 볼 수 있었고 눈 밑으로 잔잔했던 물결이 크게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어머나~, 정말 나이 생각 해야 하나 봐~
새 학기가 되면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났다. 통성명하고 몇 주 지나니 서로 명함도 오가게 되었고, 딸아이가 개학하면서 썬블락 크림을 하나 사달라고 해서 한국 식품점 간 길에 화장품 코너에 들렸는데, 그곳 주인이 학부모님? 반갑고, 잘 오셨다고, 전에 드린 명함보고 오셨냐고…
얼떨결에 듣는 미용 강좌, 관심 없어 하는 마음을 읽었는지, 올 여름 햇빛만 안으려고 길을 골라 다니셨죠? 용감한게 무슨 뜻인지 아시죠?
용감함 = ? ? 함, 뭐라고?
이참에 제대로 된 기초 화장품을 하나 사버려?
흔들리는 마음, 눈을 돌려 보지만 걸린 광고 모델들의 깨끗한 피부, 요동치는 유혹, 결정은 쉽고 빠르게.
처음 가져보는 기능성 미백 화장품, 이것 저것 샘플 한 가방 얻어 나오면서
괜히 샀나? 너무 많은 돈을 썼는데, 어쩌나! 후회 된다.
집에 와서는 아까워서 못 바르겠다.
다음 주에 만난 그분, 아직 안 바르시나 봐. 꾸준히, 열심히 바르세요.
모델 뺨치는 깨끗한 피부로 될 테니.
믿자, 뿌려진 깨 걷어진다는데.
이 가을 아침, 저녁 거울을 보며 간절히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오늘은 얼마만큼 깨가 걷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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