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서<소노마 한국학교 교장>
5분만, 사흘만 아내는 모름지기 남편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남편 덕분에 내 이름 석 자 앞에도 고유 명사 하나가 더 붙게 되었다. 3년 전 시민권을 받을 때 헬렌 켈러의 ‘헬렌’을 내 이름 앞에 붙인 것이다. 시집 식구들은 헬렌이 좀 옛스럽다고 했지만 생소한 이름보다는 내가 존경하는 분의 이름이니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풀 네임은 ‘헬렌 혜서 김’이 되었다.
내가 헬렌 켈러를 존경하게 된 시기는 아마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일 것이다. 6.25의 폐허와 복구 사이의 초등학교 시절은 무척 추웠다. 다행히 중 고등학교 시절은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인 창덕 교정에서 비교적 아름답게 보냈다. 그 시절에 난방시설이 된 교실과 수세식 화장실 그리고 멋진 체육관을 사용할 수 있었다. 윤중식 화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훌륭한 분들의 강연도 자주 듣게 되었다. 그때 눈, 귀, 입의 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가 희망과 끈기로 장애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배우고 존경심이 싹트게 되었다.
그는 안네 셜리반 선생님의 헌신으로 촉감만으로도 나뭇잎 하나하나의 섬세한 균형과 노래하는 새의 행복한 전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촉감으로 이렇게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데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꼭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첫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했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하고 ‘사흘만 볼 수가 있다면’이라는 글을 남겼다.
정채봉 선생님께서도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단 5분만 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하시며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고 노래하셨다. 단 5분만 볼 수 있다면, 꼭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고... 그런데 지금, 올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은 이 시각에도 ‘5분만, 사흘만’이 아닌 훨씬 더 놀라운 축복이 여기 내 앞에 널려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