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주부>
그러니까. 마음 비우기에 달렸다.
황량해 보이는 겨울의 들판이 사실은 참으로 아름답다. 풍성하게 차 있던 가을과는 달리 텅 비어 있어서 편안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뭇잎마저 다 떨군 과실수들은 가지치기마저 끝낸 홀가분한 모습으로 안개 속에 묵상하듯이 서 있고, 시커멓게 거름흙을 덥고 누워있는 넓은 땅도 깊은 휴식에 잠겨 있다. 봄을 준비하며 조용히 속살을 찌우고 있다.
겨울엔 하늘도 저 멀리 낮게 내려앉는다. 빈 들판의 끝자락에 이마를 맞대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겨울 들판에 혼자 서면 커다란 원형 자연관에 말없이 들어선 느낌이다. 사방에 여유가 충만하고 맑은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욕심이 사라진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다. 찬 기운이 자신을 가득 채운다.
셀 수 없이 긴 기차가 하늘과 땅 사이를 지나간다. 소리도 못 지르고 지나간다. 아이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주-욱 그어놓은 하나의 긴 밤색 줄 같다. 기차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기차가 아니다. 자연과 잘 어우러지기만 하면 쇳덩어리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바뀔 수가 있다. 내가 알고 있던 길고 크다는 의미도 자연 속에서는 별 것이 못된다.
밭과 밭 사이에 난 길을 따라 해묵은 나무 전봇대가 줄지어 서 있다. 짧아져 가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전봇대가 손짓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 길을 따라 끝까지 달려가면 내가 자란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나 둘 전봇대가 스쳐 사라지듯이 묵혀 온 내 잘못도 털어 내버렸으면 좋겠다. 아닌 척 하면서 잔뜩 숨기고 살아 온 내 마음속의 미움들이 이젠 너무 무겁다.
겨울의 밤은 유난히도 길고 깜깜하다. 그래서인지 새벽 뜰에 내려앉는 하얀 달빛이 말할 수 없이 교교하다. 차고 부드러운 빛을 천지사방에 비추며 묵묵히 긴 밤을 밝힌다. 자랑하지 않는 그 은은함이 사람의 속마음을 다 드러내게 만든다. 얼마나 인색하고 팍팍한 삶을 살아 왔는지 스스로 고백하고 싶도록 만든다.
겨울이 이렇게 자연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훌훌 털고 가볍고 편하게 살라 한다. 화해의 봄으로 가는 길목이 나의 마음 비우기에 달렸다. 텅 빈 아름다운 겨울 들판에 서서 비워내기의 아름다운 법칙을 배운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먄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겠지. 희망이 있다. 그러니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