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자영업>
그러니까 나는 안다. 선생님의 손길을.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20살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의기충천 하나만으로 학급을 맡은 것이다. 다른 반과의 균형에도, 다른 선생님들과의 관계에도 별 상관없이 혼자 열심이었었다. 정규시간이 다 끝난 후에도 아이들 전원을 5시까지 붙들어 두고 그림이다, 성악이다, 주산이다 개인별 특기지도까지 해 대었으니 급기야는 여기저기에서 주의를 듣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좋았다. 나에게 맡겨진 60명의 아이들이 보석보다 더 예뻤다. 일기장을 검사하며 아이들의 생각에 즐겁고도 놀라웠고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와 이야기를 붙여오는 모습들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연극에 운동에 장난을 같이 치며 지냈던 행복하고 보람찼던 시절이었다. 나의 첫 제자들, 60년, 61년 생의 5학년 5반 아이들.
가끔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타거나 긴 에스커레이터를 오르내리면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을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혹시나 아는 아이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35년도 더 된 지난 세월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한들 알아보기나 할까마는 그래도 행여나 하는 바램을 버리지 않는다. 물론 번번이 헛수고만 했다.
중학으로 진학한 아이들이 반창회라며 등산도 같이하고 내가 결혼을 한 후에는 우리 집에 놀러 와 음식도 같이 해 먹으며 놀다 가곤 했었다. 아무래도 첫 정이라 그런지 그해의 아이들과는 특별한 끈으로 묶여 있었다. 내가 자녀를 낳고 양육하며 바쁜 학교생활에 허덕일 때 소식이 끊어졌다. 그러다 우리가 미국생활로 접어들면서 아주 끈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불혹의 나이를 넘겼을 아이들이 나는 지금도 보고 싶다. 멋진 중년이 되어 힘찬 웃음을 웃을 그들이 보고 싶다. 아들딸을 자랑스럽게 소개 할 그들이 보고싶다. 아니 어쩌면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 쓴 소주잔을 기울이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노오란 개나리가 학교 담장을 뒤덮던 봄날의 햇살처럼 그들의 잔 등을 다시 한번 포근하게 다독거려 주고 싶다. 나는 안다. 선생님의 손길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하루를 온통 들뜨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왜냐하면 나 또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내 선생님의 그 손길을 잊지 않고 살아온 한 어린 아이 였으니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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