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보석 전보열(오른쪽)대표와 막내딸 제이드 박씨.
‘바니보석’전보열 대표
한국·남미 40년 포함 50년 종사
“신용이 생명… 성공은 입선전 덕”
그가 처음 보석과 인연을 맺은 것은 반세기 전인 1955년. 군 제대 후 동대문 시장에서 금은방을 하던 형의 영향을 받아 인근에 ‘미금사’라는 조그만 가게를 차린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생활신조로 삼아온 정직과 성실을 버팀목으로 삼아 사업을 조금씩 키워 남대문 인근 자유시장, 미도파백화점 앞 등 점차 목좋은 곳으로 옮겼으며, 1968년 당시로선 드물게 에어콘까지 갖춘 최고의 샤핑센터로 지어진 반도조선아케이드에 입점하는 꿈을 이룬다.
튼실하게 업소를 꾸려가던 그는 1970년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대형화재로 아케이드가 전소되는 바람에 사업체를 통째 날린 것이다. 난관에 봉착한 그는 어렵게 자금을 마련, 명동입구 코스모스 백화점 안에서 수년간 사업을 했으나 장사가 신통치 않아 재기에 실패하고 만다.
전대표는 그후 호구지책을 궁리하다 결국 수중에 돈도 거의 없이 이역만리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난다.
브라질을 거쳐 1996년 미국에 들어오기까지 남의 나라에서 조국에서와 같은 길을 걸어가느라 강도를 만나 업소를 거의 다 털리는 등 고생도 많았다.
그는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조금씩 돈을 모아 미국으로 다시 이민을 왔고, 당시 현 위치에 있던 코스모스전자 몰 안에서 ‘바니보석’을 오픈한다. 이때부터 사업은 순항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만들었던 단골을 다시 만나는 등 행복한 일도 하나 둘씩 늘어갔다. 바니는 수 년전 코스모스전자를 따라 윌셔가 인근으로 이전했다가 재작년 11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로 태어난 코스모스 빌리지 몰로 돌아왔다.
전 대표가 인생의 산과 계곡을 체험하는 동안 잘 자라준 딸들도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운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게 된다. 불문학 박사로 한국에서 거주하는 둘째를 뺀 네 딸은 모두 GIA 감정사 자격증을 갖고 보석상을 운영하고 있다.
첫째와 셋째는 피닉스에서, 넷째는 프레즈노에서 장사를 하는 가운데 넷째는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 백화점, 히스패닉 마켓 등 4곳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보석상의 딸답게 ‘제이드’(Jade)라는 영어이름과 ‘옥’이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있는 막내는 바니에서 아버지를 돕고 있다.
한 평생을 보석과 더불어 살아온 전 대표는 “성실하게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 보석상이라는 점이 딸들을 이 업종에 들어서게 한 것 같다”며 “신용이 첫째이고, 그것을 손님이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을 늘 들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입선전 덕분에 바니의 오늘이 있다”며 수많은 단골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213)382-2580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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