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 기자가 복개된 청계천의 물길을 매만지고 있다.
시위대-전경 꽉 막힌 대치
해법 못찾는‘대추리’ 시위-사회 양극화 골머리
소설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묘사된 서울은 싸늘하다. 잿빛 서울은 인간의 냄새를 찾기 힘든 도시였다. 그러나 30여년이 흐른, 2006년 서울 도심은 풀내음과 물비린내에 휘감긴 채 사람의 땀냄새와 뒹굴고 있다.
주말인 13일 서울 시청 앞 광장. 자동차와 궁합을 맞추던 아스팔트 대신 잔디밭이 깔린 이곳은 사람들의 독차지다. “주말에 교외로 나들이 나갈까”란 서울 아빠들의 레퍼터리가 새롭게 바뀐 시청 앞에서는 궁색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도심의 빌딩 숲 사이에 누워 바라보는 서울의 하늘은 교외가 가질 수 없는 묘한 쾌감까지 준다. 회사원 정모(31)씨는 “지나치기만 했는데 막상 오니까 상쾌하기까지 하다”며 일상 탈출의 기분을 설명했다.
잔디광장에서 ‘뒹굴뒹굴’이 지겨워진 이들은 세종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 후 무교동, 광교로 이어지는 청계천의 시원함을 맛본다. 아스팔트의 지열과 후끈한 서울의 날씨도 부활한 청계천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청계천에서 물을 퉁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으려는 아빠, 엄마로 청계천은 연신 부산함을 떨고 있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함은 월드컵과 맞물리며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시청 앞 광장과 청계천에서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매는 각종 이벤트가, 고층 빌딩 벽면은 벌써부터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표어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청계천의 한 켠에는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시의 ‘대추리’시위대의 무거움도 자리잡고 있었다. 유쾌함과 활력이 가득 찬 청계천의 또다른 얼굴은 시위대와 전경차량이었다. 시위대와 전경들로 가득 찼던 1980년대 서울의 거리는 2006년에도 어김없이 현재 진행 중이었다.
사람들의 흔적으로 뒤덮이는 서울의 거리는 부의 양극화도 드러내고 있다. 압구정동 등 강남 거리에서 벤츠, 아우디 등 외제차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반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남대문 시장도 사람들의 물결로 넘실거린다. 부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각자의 영역에 넘쳐나는 것이다.
2006년 5월 서울의 모습은 묘하다.
한쪽에선 잔디를 깔고 물길을 끌어대며 사람냄새를 풍기는 반면 또다른 곳에서는 가파른 사회 양극화가 진행되며 사람을 서로서로 격리시키고 있다. 한 택시기사는 “외관은 바뀌어도 사는 거 뭐 별 것 있겠어요”라며 인조물길 청계천을 싸늘히 쳐다봤다.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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