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원(아름다운 재단 간사)
겨울이 다가오는지, 쌀쌀한 찬 공기에 움츠리고 굳어진 심신을 사르르 녹여주는 뜨뜻한 방구들이 그리워진다. 다른 한편으론, 함박눈이 내려 온 세상을 눈부시도록 하얗게 덮는 것이 보고 싶어진다. 겨울이 오면 마음속을 누비며 다니는 두 편의 시가 있다. 하나는 십대 중반, 한창 이상세계를 꿈꾸며 ‘혁명’이란 두 글자에 괜시리 심장이 뛰던 그때, 학교 선생님께서 노트에 한자로 적어주신 시이다.
눈 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남긴 자국은
훗날 뒷사람의 길이 되느니
김 구 선생이 자주 읊었다는 이 비장한 시는 큰 사람이 되어 세상을 어떻게 해보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하던 학창시절, 등대와 같은 빛을 비춰주었다. 그런데 세계 변혁은 고사하고 나 자신조차 변화시키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리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진정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란 또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를 깨달아 가던 이십대 중반 무렵, 다른 시 한편이 찾아 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그 전하는 바가 너무나도 강렬해서, 더구나 식어가는 인류에 대한 애정 혹은 ‘나, 나, 나’ 거리면서만 살아온 뭐 그런 마음을 부끄럽게도 확 들켜버린 것 같아 한 번 듣고는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았다. 얼마 전, 이 두 시상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듯한 “연탄 한 장”이라는 안치환의 노래를 발견했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 게 두려워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려 하지 못했나 보다
하지만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다른 이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나는 만들고 싶다.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삶을 그만 중단해 버리고, 또 다른 어딘가의 길거리에서는 알지 못하는 타인의 마음을 녹여주기 위해 안아주기 운동을 하고 있다. 가만 보니 이 초겨울, 사람들은 피부보다는 마음에서 더 추위를 타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이 더없이 쓸쓸하고 고단하게 느껴지는 겨울 같은 순간, 길을 못 찾아 아득하니 서 있을 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한 발 앞으로 딛고 나가게 해 주고 싶다.
이번 추수 감사절에는 인생이 무르익으면 무엇을 추수할 것인가도 곰곰 생각해보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마음의 불을 지펴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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