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길게 주어진 여유시간. 늘 지나다니면서도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했던 구릉인지 산인지 모를 곳을 올라가 본다. 굴곡있는 벌판이라 할까, 나무라고는 한참을 가야 한두 그루 띄엄띄엄 있을 뿐이다. 수목이 우거진 산길 그 정상까지 오르지 않을 바에야, 이런 곳에서 탁 트인 전경을 내려다 보는 것도 꽤 색다른 맛이 있구나 싶어 자꾸 뒤를 돌아본다.
“친구들도 별로 없는데, 수고하고 있네.” 길 가까이 서 있는 나무가 나오자 반가워 말을 건넨다. “어딘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노래라도 불러줄까?” 아는 노래를 아무거나 흥얼흥얼 거리다가 문득 몇 년 전 자연음악이란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한 일본소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무의 노래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그 아이는, 들리는 대로 옮겨 적은 곡을 몇 곡인가 담아 음반을 발표했다. 특별히 기억나는 멜로디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어딘가 신비로운 느낌이 나는 단순한 소리의 모음이었다. 나무들은 그렇게 각각의 소리로 자연을 치유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그 소리가 급격히 줄었다고 했다. 나무들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깨져가는 자연의 균형을 회복시킬 수가 없게 되었다나. 그래서 그 노래를 사람들이 모여 합창했더니 인근 튤립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고 나무들이 부쩍 자랐다는 그런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좀 황당한 소리일수록 더 귀를 기울이는 미래학 시간에 발표준비를 하느라 다시 조사해보니 그 소녀는 종적을 감췄고, 상업적으로 명상음악화에 성공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이름으로 연구소도 운영하고 음반도 발매하고 있다고 한다. 기나긴 세월 이 별을 지키느라 지친 나무를 도와 자연을 건강하게 하자는 그 노래모임에 동참할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나무들의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너는 어떤 노래를 부르는 나무일까? 나는 들을 수가 없지만 하여간 힘을 내라.” 어깨를 두들겨주고 내려온다. 나무와 헤어지며 나도 때에 맞춰 멋있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늘 나무가 내게 불러주는 노래다. 잊을만하면 또 찾아오는 겨울, 그거 견뎌내면 강해질 거야. 깔짝거리던 벌레들이 얼어 죽으니 추울수록 좋은 거지. 희망을 싹 틔워 먼저 봄을 불러. 강렬한 태양빛에 녹음 푸르르면 시원한 그늘도 되어 주고, 예쁜 꽃도 피우고, 수고한 대로 풍성한 결실을 맺자. 그리고는 홀가분하게 다 털어내고 또다시 시작하자는, 질리지 않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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