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시인)
요즈음 상록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나무들이 많이 가난해 보인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의 모습이 마치 긴머리를 빗지 않고 마구 풀어 헤치고 있는 것 같아 눈길을 주고 싶지 않다.
여름날 풍성하던 푸른 잎사귀들이나 가을날 형형색색으로 단풍 들었던 모습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생동감 넘치고 화려했던 지난날과 비교하기 때문에 더 형편없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볼품없는 나무들은 겨울이라는 골방에서 자기를 돌아보며 인내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무엇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그런 침묵을 깨기라도 하듯 비가 내린다. 지형적인 특색이라고 할까.
겨울에 내리는 비로 인하여 이 북가주의 온 산과 들은 나무와는 대조적으로 푸르르고 신선하다. 창백하던 모습이 마치 영양을 충분히 받은 듯 제 혈색을 찾았다. 그린 카펫을 펼쳐놓은 듯 매끄럽고 윤이 난다.
이렇게 비가 내리고 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빈 나무 가지마다 이슬이 맺혀 있다. 그 맺혀 있는 이슬에 잠시 비쳐진 햇살로 인하여 꼭 유리구슬을 줄줄이 꿰어 매달아 구슬옷을 입고 있는 듯하다. 장식을 해 놓은 것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워 보고 또 본다.
잎이 무성하였다면 아마도 맺혀 있는 아름다운 구슬들을 볼 수 없었을 것임을 생각하며 나의 삶과 비교해본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생각지 않은 일이 일어나서 위로가 되고 견딜 수 있었던 것말이다.
계속 내리는 비에 젖은 초라한 겨울 나뭇가지를 보며 봄을 기대한다. 새 생명으로 가득 채울 봄은 겨울이라는 터널을 통과한다. 그 터널에서 씻기고 겸손하게 비운 후에 봄이 오는 것임을 생각하며 나의 생각과 마음도 겨울 비에 젖어본다.
겨울 비
겨울나무
중년 넘은 여인처럼
지나치게 치장했던 두툼한 포장지
한 겹 한 겹 벗어버렸는데
머리서 발 끝까지
무섭게 두들겨댄다
그렇지 않아도
수치스런 속살 다 드러나
알량한 자존심
내려놓을 대로 다 내려놓았는데
모자라는가 보다
아직도
깊이 숨겨둔 양심(兩心)
조목(條目) 조목 낱낱이 점검하여
계산하라고
집요하게 추궁한다
달빛처럼 부드러운 웃음 뒤에도 숨긴
서러운 목멤까지도
빗물에 게워버리고
더 가난해지라고
아주 비워버리라고
따갑게 채찍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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