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공인회계사>
얼마전 ‘The Writer’ 잡지에 잘 알려진 펄벅의 ‘대지’ 출판 75주년 기념기사가 실렸다. 50, 60년대 한국 젊은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만치 널리 읽혀진 책이다. 큰 문학적인 가치도 있지만 전후 문화적 공백을 이 소설이 채워주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아직도 농촌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시, 책의 제목이 가져다 주는 농촌에 대한 친근감, 동양을 잘 아는 서양사람이 쓴 책 등 전후 어려운 생활이 가져다 주는 막연한 서양에 대한 동경심 등이 이 책이 널리 읽힌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어려운 농촌생활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이야기가 더 마음에 다가왔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 출판이 ¾세기가 지났다. 책의 배경이 1930년대이니 전세계적으로는 경제공황이 시작될 때이고 일본은 한국을 거처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 내륙을 공격하는 때였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의 자녀로 중국에서 태어나 영어보다 중국어를 먼저 배운 작가는 중국을 퍽 사랑했다. 그가 쓴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가 직접 체험하며 쓴 것이라 독자들로부터 더 사랑을 받았다고 어떤 평론가는 이야기했다. 이 작가는 70여편의 소설, 단편, 시, 그리고 여러 번역물 등 참으로 왕성하게 집필 활동을 했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동화도 많이 쓰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펄벅은 시인도 아니었고 동화작가도 아니었다. 1973년 80세 나이로 타계한 그는 어느 문필가보다도 적극적인 사회 참여활동을 펼쳤다. 두번 결혼한 후에도 자녀가 없었던 펄벅은 남편 Richard Walsh와 7명의 아이들을 입양,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웠다. 그가 남긴 발자취 중에 펜실베니아 벅스 카운티에 위치한 60에이커 땅에 “Green Hills Farm”에 설립한 펄벅 국제재단을 들 수 있다. 이 기관을 통하여 매년 십여 만명의 아이들, 그들의 어려운 부모나 아이들이 힘을 얻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게 기업화 되는 주변에서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난 이 작가의 선행은 참 아릅답다.
작고하기 전 남편과 함께 근처에 농지를 사서 목장을 경영하여 퍽 성공도 했다. 지금은 “bed and breakfast”도 겸하지만 재단에서 계속하여 목장도 경영한다. 아마 이 작가는 “대지”에서 태어나 자라고 “대지”에서 문필가로 대성하고 “대지”에서 그가 축적한 부를 사회에 돌려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미국을 거처간 많은 훌륭한 사회사업가처럼 살아서 쌓은 업적을 누리는 것보다 세상을 떠난 후 남을 섬기는 일이 그들을 더욱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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