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우리 학자나 외식업자들은 김밥이 일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밥의 유래가 한국에서 시작되었느냐 일본에서 시작되었느냐를 논하기전 김의 역사부터 알아 봐야할 것 같다.
김을 한문으로 해의(海衣) 또는 해태(海苔)라고 한다.김이 문헌상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최초의 문헌은 고려 충렬왕 때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명나라 때 편찬된 박물사전인 ‘본초강목’을 보면 신라의 깊은 바다 속에서 채취하는데,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 따온다. 4월 이후로는 ”대어가 나타나 해치기에 채취할 수가 없다라고 전하고 있다.
김 양식에 대한 최초의 문헌은 1424년에 쓰여 진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김 양식의 기원이 나타난다.
하동지역의 전설에 의하면 약 260년전 한 할머니가 섬진강 하구에서 패류(貝類)를 채취하고 있던 중 김이 많이 착생(着生)한 나무토막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붙어 있는 김을 뜯어 먹어 본 즉 매우 맛이 좋아서 그후 죽목(竹木)을 수중에 세워 인공적으로 김을 착생 시킨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보면 ‘ 전남 광양군에서는 400년 전부터 김을 토산으로 진중(珍重)하게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1481년 4월에 서 거정(徐 居正)이 [여지승람]을 펴낸 이후 1486년 김종직(金 宗直)등이 이를 개정하여[동국여지승람]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의 김은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봐야 한다.1809년에 쓰여 진 [만기요람]에도 이미 ‘해의전(海衣田)’이란 이름이 보인다.
인조18년(1640년경)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었던 전남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이 해변에 표류해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보고 양식하기 시작하여 그 양식 법을 널리 보급하였다하여 그의 성(姓)을 좇아 ‘김’이라 명명하였다고도 한다.‘오후사쓰요이’박사의 <바다채소>라는 책에서 일본은 에도시대(도꾸가와시대) 교호 초기부터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초,중반 이후부터 김을 취급한 것으로 보여 우리보다 훨씬 나중에 김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1800년도 경부터 ‘김’을 취급했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는 훨씬 이전부터인 신라시대 또는 최소한 조선초기인 1400년경부터 취급해 왔으니 우리가 일본에 비해 ‘김’식단 문화는 훨씬 앞서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솔을 참기름 종지에 찍어 마른 김에 발라 석쇠로 구워 밥을 싸 먹는 쌈 문화가 바로 김밥의 원조라고 봐야 할 것이다.일본에서 유래된 초밥의 원조가 관서 지방인 것과 달리 우리의 김밥과 비슷한 김 초밥(노리마끼)은 관동지방(동경)이 원조다. 김 초밥은 모양이 총을 닮았다고 하여서 ‘대포마끼’라고도 부르는 ‘호소마끼’(細卷:김 한 장을 반으로 잘라 밥의 가운데에 박 속을 넣어만든 것:아주 일반적임)나 ‘데까마끼’(鐵火券:생선말이김밥)는 에도(동경)지방에서 창안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김밥과 매우 비슷한 ‘데까마끼’는 속에 참치가 들어간 김밥의 일종으로 에도시대 말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 사이에 동경의 한 ‘스시야’에서 고안되었다고 한다. 도박장에서 놀던 사람들이 색다른 김밥을 부탁하여 ‘박 속’대신에 참치를 넣고 와사비를 첨가해 먹기 편하게 작게 싼 데서 유래되었으며 ‘호소마끼’의 반대인 ‘후또마끼’(太券:‘오오
마끼’라고도 합니다)는 ‘호소마끼’와 달리 김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싼다.일본이 김을 알게 된 년대도 18세기 이후며, 노리마끼(김초밥)가 생긴것도 에도시대 말부터 메이지시대 초기라면 1860년대 이후다.
오히려 일본의 김초밥은 한국의 김쌈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현재 한국의 김밥은 그 가짓수가 수십가지에 이르고, 참치김밥, 김치김밥, 불고기김밥등 재료에 비롯된 이르과 태극김밥, 장미김밥, 누드김밥등 모양에서 비롯된 명칭이 모양과 맛 만큼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다.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향토색이 짖고 대중적인 입맛을 사로잡은 김밥하면 충무김밥을 들 수가 있다.
충무김밥은 1930~ 1960년대 통영에서 황무지인 <벼락땅>을 터전으로 노점을 하시던 할머니들이 갑 오징어를 양념에 절여서 김밥으로 만들어 뱃머리에서 팔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여름날 통영에서는 김밥이 쉽게 쉬게 되어 밥과 반찬을 분리하여 팔기 시작하였고 특히 갑 오징어 무침은 애주가들로부터 인기가 좋아 반찬만을 사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거기다가 넓적하게 썰어서 통영 멸치젓으로 담근 무김치는 입맛을 돋우는데 그만 이었다.
그 당시 미륵도, 사량도 등지의 섬에서 통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뱃머리에는 광주리에 음식을 담아서 파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많았는데, 특히 뚱보 할머니, 꼬지할머니, 최가메할머니등이 광주리 장사를 청산하고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다 어느 날 뚱보 할머니(이두익 씨)가
충무김밥을 <국풍 80>에 참가하여 전국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여 통영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메김하게 된 것이다.
뚱보 할머니김밥은 지금도 항남동(舊여객선 터미널)앞에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기름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맛이 담백하고, 국물은 시락국을 사용하지 않고 멸치 우려낸 국물에 파를 띄워서 맛을 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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