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무진 한국여인 야물이’ <12>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닭 도둑은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몇 마리는 잃어버린 적이 있는 것 같다. 이삼십 년 뒤에 어떤 남자가 순이 언니에게 우리 닭을 훔쳐갔노라고 시인을 했다니까.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간 뒤에 그런 고백을 했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말이 고백이지, 사과를 한다거나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그때는 우리 집에 듀키라는 훈련받은 사냥개가 없어서 그 닭 도둑은 재수가 좋았던 셈이다.
언젠가 한 번은 대낮에 사건이 발생했다. 닭 도둑질보다는 훨씬 심각한 일이었다. 그 경위는 이러했다. 어머니는 철길에 면한 닭장에서 채소밭 비료로 쓸 배설물을 긁어내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서서 어머니 하시는 일을 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뭉환 오빠한테 가서 애기(해리)우유를 한 병 데우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 “엄마가 ...” 내가 오빠에게 달려가서 막 그 말을 전하려는 순간 철길 쪽에서 조용한 숲의 정적을 뚫고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뭉환 오빠는 십이삼 세의 틴에이저였지만 목소리는 날카롭지 않았다.
오빠가 “허, 이게 무슨 소리냐?”면서 권총 한 방을 쏘자마자 옆에 있던 개들이 소리 나는 방향으로 날렵하게 달려갔다. 침입자는 내가 어머니 말을 듣고 자리를 뜬 순간 이미 살며시 어머니한테로 바짝 다가들어 눈을 가린 다음 삼베자루로 덮어씌우려는데, 바로 그때 어머니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놈은 우리의 반응이 하도 잽싼데 놀라서 철길을 건너 정글 속으로 튀었다. 어머니는 완전히 기가 질린 상태였으나 다친 데는 없었고, 우리가 위로를 해드렸다. 그로부터 네 시간 뒤, 어머니는 오후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보고, “아이구! 미 넬리모 마케(나 죽는 줄 알았어요)”라고 울면서 말했다. “Son of a bitch, confounded(개자식, 망할 놈 같으니라구)!”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아버지가 하시는 말이었다. 여간해서 욕을 안 하시는 아버지였지만, 일단 화가 나시면 주로 영어가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단호한 자세로 성큼성큼 지하 공구선반에 가서 마셰테(machete, 벌채용 칼) 한 자루와 넓적한 손톱줄을 하나 거머쥐었다. 아버지가 조심스레 천천히 망치로 내리쳐서 마셰테 날을 바로잡고 계시는데, 어머니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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