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밀집 지역인 플러싱 일대 밀집해 있는 21개의 역사 유적지 가운데 지금까지 15개가 소개됐다.
남은 6개 사적지들에 대한 소개로 플러싱 사적지 시리즈는 막을 내리지만 독자들은 플러싱 지역 곳곳에 설치된 사적지 표지판의 상세 설명을 통해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밟아볼 수 있다.
‘루이스 H. 라티머 주택(The Lewis H. Latimer House)’은 버지니아에서 도망친 흑인 노예의 후손 루이스 라티머가 살던 집이다. 토마스 에디슨의 수석 보조원이었던 라티머는 에디슨의 전기 발명과 알렉산더 벨의 전화기 발명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RKO 키스 극장(RKO Keith’s Theatre)’은 1928년 크리스마스에 개장했으며 밥 호프나 잭 베니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활약한 주 무대였다.
한편 플러싱 일대 불어닥친 근대화 물결에 의해 붕괴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아쉬움을 더하는 사적지들이 있다. ‘아스핀월 하우스(Aspinwall House)’는 1762년 존 아스핀월(John Aspinwall)이 ‘존 바운 하우스(37-01 바운 스트릿)’ 부근에 건축했으며 미국독립전쟁(1775-1783) 당시 플러싱 주둔 영국군의 징집 장소로 사용됐다.
‘플러싱저널(The Site of the Office of the Flushing Journal)’은 1842년 찰스 링컨이 창간한 주간지로 1852년까지 플러싱의 유일한 신문으로 존재했었다. 메인 스트릿과 프린스 스트릿 사이에 이 신문사가 자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737년에 지어진 ‘윌리엄 프린스 종묘원(The Site of William Prince Nurseries)’은 미국의 첫 상업 종묘원 가운데 하나로, 1780년경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이 종묘원의 과일 정원과 관목 숲을 방문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될 사적지로는 ‘플러싱여성협회(Flushing Female Association Schoolhouse)’가 자리했던 터가 있다. ‘플러싱여성협회’는 플러싱 일대 첫 무료학교를 세운 여성 단체로 당시 퀘어커교도가 대부분이었던 협회원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동들의 미래를 염려해 1814년 학교를 건립했다. 학교는 100년간 유지되어 오다가 공립학교제도가 실시되면서 1925년 문을 닫았다. 그러나 플러싱여성협회는 아직 존재하고 있으며 매년 플러싱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해 오고 있다.
<정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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