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10)
▶ 한인여학원에 남학생 입학
1916년 2월 28일에 Honolulu Advertiser는 “Seminary For Korean Girls in Flourishing Condition 이라는 제목 하에 한인여학원을 자세히 소개 하면서 이승만이 50여명의 학생과 찍은 그룹사진도 실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교장 L. G. Starks 여사는 오래곤 주의 Portland에서 왔고, 기숙사 사감 Mariam Dickinson 양은 매리랜드 주의 Pocomoke에서 왔는데, 두 명이 다 자원봉사로 외국 선교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 하였다.
다른 두 명의 미국 여 교사는 Mrs. M. K. Wright와 Mrs. P. A. MacCaughey이며 이들은 약간의 보수를 받았다.
이들 4명의 미국인 교사가 공립학교와 같은 학제로 모든 학습을 영어로 가르쳤으며, 또한 2명의 한인 교사 (이름은 밝히지 않음)가 하루에 30분씩 한글도 가르쳤다.
책으로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재봉, 요리, 집안 정돈 등도 가르쳤는데, 학교를 졸업한 후 집으로 돌아가 집안을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인여학원의 교육 과목과 형태는 이미 한인중앙학원에서 실행하였던 것이며, 후에 한인기독학원에서도 실행하였다.
한인여학원은 1918년 1월에 남학생을 받아드리기 시작하였다. 학교 이름은 그대로 한인여학원이었으나, 남녀공학제로 바뀌었다.
이승만은 감리교의 한인중앙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고 한인여학원을 설립했을 때부터 남녀공학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한인여학원이 잘 운영되자 남학생을 받아 드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1916년 말에 54명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1918년 1월에학생 수는 약 100명으로 증가되었고, 이 중 35명이 남학생이었다.
여학생들은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고, 남학생들은 ‘day scholars’로 학교 근처에 국민회가 운영한 기숙사에서 살면서 통학하였다. 교사도 1명 더 증가되어 9명의 교사가 가르쳤다.
Honolulu Advertiser는 1918년 1월 9일에 한인여학원 재무 R. O. Matheson (Matheson은 Honolulu Advertiser의 사장이기도 하다)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다시 한인여학원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Korean Support Their Own School Treasurer’s Report Shows They Pay Ninety-one Percent of Expense During Past Year 라는 제목으로 1917년도 학교 운영비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p. 2). 총 수입이 $11,252.43 이고, 총 지출은 $9,460.70으로 흑자로 운영되었다.
총 수입의 약 33% ($3,670.75)는 한인들이 국민회를 통하여 보조하였고, 약 22% ($2,442.65)는 학비로 들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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