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12)
▶ 한인기독학원으로 개편
앞의 신문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한인여학원은 잘 운영되고 있었고 호놀룰루 사회에 잘 알려졌다. 그리하여 이승만은 1918년 9월 학기부터 한인여학원을 8년제 남녀공학으로 재조직하고 한인기독학원 (Korean Christian Institute, 흔히 줄여서 KCI로 불렀음)을 개교하였다.
Puunui 부지는 경사가 심하고 넓은 평지가 없어 이 곳에 학교 시설을 더 확장할 수 없었다. 마침 국민회가 남학생 기숙사를 짓기 위해 구입한 9.5 에이커의 레아히농장 부지에 2만 달러를 들여 남학생 기숙사, 여학생 기숙사, 교사의 3 건물과 세탁 설 비등을 지을 계획으로 Ripley and Davis 건축설계회사가 설계하였다. 여학생 기숙사와 교사 건물은 한인여학원이 짓고, 남학생 기숙사는 국민회에서 짓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천되지 못하였고, 이승만은 Waialae가 3320번지 구 알리이올라니 학교 (Aliiolani College: 당시 ‘College’는 고등학교를 지칭함)를 임대하고 9월 학기부터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은 한인여학원의 교사였던 Mabel Hartson 여사였다.
한인여학원의 영문 정관에 학교의 목적이 순전히 교육과 자선이라고 간단히 기술되었는데, 이 목적이외에 이승만은 한인기독학원을 위해 4 가지 지침을 작성하였다. 첫째는 교육과 종교 활동을 지향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인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며, 셋째는 젊은이들의 지도력을 양성하고, 넷째는 사회교육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Honolululu Star Bulletin은 한인기독학원이 기숙사를 제공하면서, 한인 학생들에게 기독교 교육을 실시하며, 좋은 시민이 되고,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가르치며, 한인사회를 이끌어갈 기독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기사화 하였다.
개교한 첫 학기에 남학생 37명과 여학생 64명이 등록하였고, 4명의 미국인과 2명의 한국인 교사가 그들을 가르쳤다. 방과 후에 가르친 한글과 한국사를 제외한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교과과정은 공립학교 과정과 같았기 때문에 졸업 후 공립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정규 교과과목 이외에 성경도 가르쳤으며 여학생들은 가사 과목과 재봉을, 그리고 남학생은 수공(手工 manual training)도 배웠다.
보이 스카우트 (Boy Scout Troup 19)가 조직되어 대부분의 남학생이 보이스카우트의 회원이었고, 여학생들은 YWCA 소녀회원이었다. 여러 가지 스포츠 팀이 있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도 있었다.
학비는 무료였으며, 1년 기숙사비는 실비에 해당하는 60 달러였는데, 기숙사비를 낼 수 없는 학생에게는 면제해 주기도 하였다. 학생들은 방학동안에 마당일이나 부엌에서 일하면서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였다. 학교 이름에 드러나듯이, 학교 분위기는 기독교적이었다. 그래서 하와이 교육청장 Vaughan MacCaughey는 한인기독학원의 학생들을 미국화 시키고 동시에 기독교인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여러 번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격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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