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16)
▶ 동아일보의 고국방문 밀착 기사
학생들의 고국방문 계획 논란이 일고 있던 1923년 5월 16일에 1306 Miller Street 동지회 사무실에서 이승만은 한인여학원 관계자들과 가진 회의에서 1916년 11월에 하와이 정부에 등록된 한인여학원 정관의 이름을 한인기독학원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5월 31일에 하와이 정부에 이름 변경을 신청하였다.
한인기독학원이 개교된 지 5년이 되도록 정식으로 학원 정관을 등록하지 않았었는데, 이 때 정관 등록을 하여야 했던 이유는 학생들의 고국방문과 관련에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학생 20명과 교사 3명의 여권 발급에 정식으로 등록된 학원 증명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인여학원이나 하와이 섬 동지촌의 경우, 이승만은 언제나 정부에 정식으로 법인과 정관등록을 하였는데, 한인기독학원은 따로 정관 등록을 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한인기독학원이 한인여학원을 재조직 한 것이었기 때문에 따로 등록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1923년에 학교 이름과 학교 자산 액수만을 변경한 (5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인상) 1916년의 한인여학원 정관을 한인기독학원 정관으로 등록하였다.
한인여학원의 목적과 이사진의 이름도 1916년 그대로 유지하였다.
한인기독학원이 개교 된 1918년 가을에 이미 하와이를 떠난 이희경도 그대로 포함된 것은 한인기독학원이 한인여학원의 재조직임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인여학원과 한인기독학원의 태극 문양 로고(logo)도 같다.
1923년 6월 20일에 재학생 55명 중에서 20명 (남학생 12명과 여학생 8명)과 교사 민찬호, 김노듸, 김영우로 구성된 방문단이 링컨호 (S. S. Lincoln)로 호놀룰루를 떠나 요코하마를 경유하여 7월 5일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동아일보』는 이때부터 방문단이 서울역을 떠나 호놀룰루로 돌아오는 9월 2일까지 한국의 30개 이상의 도시와 마을, 또 남만주 지린(吉林)시와 짜오양(朝陽)이라는 마을을 순회하는 동안 계속하여 이들의 활동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한인기독학원 학생들의 모국방문단은 경비를 빼고 약 4천 900 달러를 학교 건축비로 모아 가지고 9월 18일에 돌아왔다.
이 4천 900 달러 (2007년도의 구매가격으로 약 10만 달러) 이외에 『동아일보』에 맡겨져 있는 금화(미화?) 3천여원(달러?)을 포함해도, 학교신축에 필요한 1만 5천 달러의 반 정도의 액수였다.
액수는 실망스러웠지만, 하와이 한인 학생들이 고국을 몸소 체험했고, 고국 동포들이 말로만 듣던 하와이 한인 학생들을 직접만나 볼 수 있었으며 또한 『동아일보』가 밀착 기사를 계속 실어준 것은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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