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18)
교장 이승만이
학교 운영 재시도
위의 Honolulu Star Bulletin 기사에 김노듸가 기숙사 사감으로 소개되었지만, 김노듸는 고국방문에서 돌아 온 후부터 1932년까지 10년 동안 학원 감독(학감=교장)으로 시무하였다.
Gillis 교장이 언제 사임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교장직을 맡은 지 (1922년 11월 16일 이후) 1년 만에 사임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김노듸가 9월 말에 고국방문에서 돌아 와서 교장직을 맡았다.
김노듸는 1927년 10월에 건강상의 이유로 6개월간 본토로 여행하였는데, 그 동안에 Mrs. Anna L. Bole 이 임시 교장직을 맡았다. Mrs. Bole는 한인기독학원 교사였을 것이다.
김노듸의 휴가를 보도한 신문 기사는 ‘지난 4년간 김노듸가 학교 재정이 어려운 가운데 교장직을 맡아 수고한 것에 대하여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고마워한다’고 알렸다.
1932년에 김노듸가 교장직을 사임한 후에는 교장 없이 기숙사로만 운영된 것 같다.
이승만은 1935년 1월 24일에 부인 Francesca 여사와 함께 하와이에 도착하여, 기독학원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교장직을 맡고 Francesca에게 기숙사 사감직을 맡겼다.
기독학원 설립 후 이승만 자신이 처음으로 교장직을 맡아야 할 정도로 학교 사정도 나빠졌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새 살림을 차린 이승만이 기거할 곳도 따로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궁핍했음을 엿보게 한다.
학교 설립 후 매해 발간되던 학교 재정보고서를 1928년 이후에는 발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1936년 7월에 이를 다시 발간하면서, 교장 이승만이 “금년에 우리가 학교를 다시 주장하게 된 첫 해에---”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1932년 이후에 학교에서 학과 과정을 가르치지 않고, 기숙사로만 사용하였던 것 같다.
이 사실은 1933년부터 1935년까지 2년 동안 한인기독학원을 다닌 리차드 홍(Richard Hong)의 기억과 일치한다.
Richard Hong은 한인기독학원에서 기숙하면서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을 다녔다.
그는 “그때 오전 수업만 있었는데, 큰 교실에 피크닉 테이블 (의자가 붙어있는 테이블) 여러 개가 있고, 학생들이 그룹으로 모여앉아 ‘가갸거겨’ 한글만 배웠다. 한국인 남자 선생님 2명이 가르쳤고 서양인 선생님은 없었다. 2년 후 1935년에 리케리케(Likelike) 초등학교에 3학년으로 전학하였을 때 영어를 못해 고생하다가 낙제하여 3학년을 2년간 되풀이 해야만 했다.
남학생 기숙사는 큰 방에 나무 바닥이 깔려 있었고 남학생들 전부 (열댓 명)가 담요보다 조금 더 두꺼운 이불 같은 것을 깔고 쭉 누워서 잤다.
식당에도 테이블 없이 마루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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