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희
도시계획가/이민사 연구가
오아후 섬에는 275개의 시립공원과 36개의 주립공원, 그리고 1개의 국립공원 (아리조나 메모리얼)이 있다.
주민들이 제일 즐겨 찾는 알라모아나 공원은 시립공원이다. 원래 이름은 그저 ‘모아나 공원’이었다가 1947년에 알라모아나로 바뀌었다.
미국이 1893년 하와이 왕국을 전복하고 하와이 공화국을 세운 후, 미국정부가 1897년에 하와이 공화국으로부터 지금의 알라모아나 공원 부지를 비롯한 다른 많은 땅의 소유권을 양도받았다.
이 공원 부지는 사실 땅이라기 보다는 산호초의 불모지였다. 그래서 1900년부터 이 공원 부지의 일부를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 이 부지에 공원을 설립할 계획이 시작되고, 1927년에 미국의 30대 대통령 쿨리지 (Clavin Coolidge)가 공원으로만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76 에이커의 땅을 하와이 영토에 이양하였다. 하와이 영토정부는 이 부지를 1928년에 호놀룰루 시에 양도하였다.
1930년부터 서서히 땅을 매립하면서 1931년에 캐더린 리차즈 (Catherine Richards)와 로버트 톰슨 (Robert Thompson) 이라는 두 조경가가 공원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나중에 부부가 되었다.) 같은 해에 미국의 경제대공황에 대응하는 연방 정부의 고용자 구제사업부와 토목공사부 사업의 일환으로 공원 건설이 시작되었다.
일이 한참 진행될 때는 하루 고용인이 800-90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알라모아나 블러바드를 따라가며 볼 수 있는 나지막한 돌담들이 그 때 지어진 것이다.
건설 자재도 모자라고 경비도 모자랐기 때문에 지혜를 짜내어 콘크리트와 돌을 섞어 붓는 방식으로 지어놓은 돌담이다.
이때 건설된 공원은 지금처럼 수영할 수 있는 모래해변이 아니라 선창가와 스포츠를 위주로 한 육지부 공원이었다.
와이키키 쪽 입구에 세워진 개선문 같은 입구 건물은 고용자 구제사업으로 토목공사 정책을 실시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Roosevelt)를 기념하여 ‘루즈벨트 문’이라고 이름 하였고, 1934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방문하였을 때 개막하였다.
2차 대전 동안에는 알라모아나 공원도 다른 공원과 마찬가지로 군사기지로 쓰여졌다. 막사와 무기창고가 지여졌고 대포가 놓아졌다. 물론 돌아가며 철조망으로 둘러쌓았다.
종전이 되어 갈 즈음에 군사기지로서의 기능이 적어지자 군부는 이곳을 육군과 공군의 휴양지로 변경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당시 군인들이 공원국을 관할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이 계획에 찬성하여 1년간 그렇게 사용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1945년 3월에 시의원들이 절대적으로 반대하였기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종전 후 시민들이 이 공원을 되찾아 갔을 때 황폐해진 공원에 놀라움과 분노를 참지 못했고, 1949년에야 겨우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1950년도에 오아후의 인구 증가와 더불어 공원의 중요성과 수영을 할 수 있는 해변가 공원의 필요성이 늘어났다.
그래서 선창가를 허물고 그 자리에 와이아나에 해변에서 모래를 옮겨와 인공적으로 지금의 해변가를 만들었다.
20년이 지난 1976년에 이 모래가 다 쓸려가 산호초 바닥이 들어나기 시작하여 오아후 북쪽 모쿨레이아 (Mokuleia: ‘풍부한 섬’)에서 모래를 가져다가 다시 덮었다. (어느 해안가이든 파도의 영향 때문에 주기적으로 모래가 쌓이거나 밀려가거나 한다. 다만 주기가 다르고 쌓이는가 밀리는가의 현상이 다르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와이키키 해변도 예외가 아니다.)
1959년 8월에 하와이가 50번째 주로 승격됨과 더불어 제트기의 발달로 하와이의 관광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와이키키의 호텔지역 확장이 필요하여 와이키키와 알라모아나 공원을 연결 확장하려고 하였다. 부동산 개발업자 헨리 카이저 (Henry Kaiser)가 주 정부로부터 호텔, 극장, 수영장을 포함하는 매직 아일랜드 (Magic Island) 건설계획 허가를 받았다. (해안가를 매립할 때 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1962년 300만 달러를 들여 지금의 36 에이커의 매직 아일랜드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 후 8년 동안 시민들의 줄기찬 반대에 부딪쳤고, 공원확장의 필요성을 인식한 주 정부가 마침내 1970년에 매직 아일랜드를 공원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최종결정을 내렸다. 1970년대에 원래의 스포츠 건물을 확장하여 지금의 맥코이 건물 (McCoy Pavilion)을 세웠다. 이것은 호놀룰루 시의 초대 공원국장으로 1931년부터 1941년까지 10년 동안 연봉 1달러를 받고 봉사한 챨스 맥코이를 기념하여 이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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