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스는 카리브 해에 있는 콩알만한 섬이다. 이곳에서 세계 역사를 뒤바꿀 인물이 나오리라고는 신밖에는 몰랐을 것이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은 1755년 여기서 스코틀랜드계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가 10살 되던 해 아버지는 모자를 버리고 자취를 감췄고 어머니는 그가 13살 때 병으로 숨을 거뒀다. 사촌 집에 맡겨졌지만 그 사촌도 곧 세상을 떠났고 가게 점원으로 취직하지만 때마침 불어 닥친 태풍으로 네비스 경제는 엉망이 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뛰어난 머리를 지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섬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위해 장학 펀드를 마련하고 그를 뭍으로 유학 보낸다. 이렇게 해서 뉴욕 킹스 칼리지(지금 컬럼비아 대학) 학생이 된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 몸을 일으켜 미국 창업자의 한 사람이 된다.
미 독립 전쟁이 일어나자 조지 워싱턴 장군의 보좌관으로 발탁돼 두각을 나타낸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와 함께 왜 연방 헌법이 필요한가에 관한 기고문을 발표한다. 후에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Federalist Papers)로 불리게 된 이 논문은 미국 정부의 기본 원리를 밝힌 고전일 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력한 중앙정부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던 당시 미국에서 연방 헌법에 대한 반발은 심했다. 13개주 번영과 존립을 위해 왜 강한 연방 정부가 필요한가를 밝힌 그의 집요한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미합중국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워싱턴을 수반으로 하는 초대 연방 정부가 들어선 당시 미국의 재정은 엉망이었다. 국고는 텅 비었고 주정부들은 독립 전쟁을 치르느라 쌓인 빚을 갚지 못해 미국의 크레딧은 바닥이었다. 해밀턴은 중앙은행 설립을 통해 연방 정부 설립 이전 혼란스러웠던 재정 체계를 바로잡고 전쟁 채무를 연방 정부가 책임짐으로써 해결했다. 토마스 제퍼슨 국무, 에드먼드 랜돌프 법무장관 등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밀턴은 중앙은행 설립의 필요성을 설득, 워싱턴의 재가를 받아냈다. 그를 미국 금융 재정 시스템의 아버지로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시장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감독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시장의 위기가 올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을 얻는다. 1907년 금융 대란이 발생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다. 1929년 주가 폭락과 대공황이 발생하자 증권거래 위원회(SEC)가 생겼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과 베어 스턴스 파산 일보직전까지 갔던 금융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FRB의 권한이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FRB의 감독 권한을 종전 은행에서 월가의 투자 증권회사까지 확대하고 필요한 경우 파생증권(derivative) 운용 등 모든 금융 분야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수년간 월가는 파생증권 등을 통해 원 자산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달하는 자금을 관리해 왔으며 이로 인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베어 스턴스 하나와 관련된 파생증권 액수만도 미 연 GDP와 맞먹는 13조 달러 규모다. 모든 게 잘 나갈 때는 상관없지만 뭔가 잘못 베팅을 하는 날에는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권이 휘청거리는 일이 발생한다. 폴슨의 발표는 다시는 이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정치권의 판단을 보여준다.
1929년의 주가 폭락이 대공황을 부른 것은 이것이 은행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져 금융 시스템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번 베어 스턴스 사태도 그냥 방치해 월가 투자 증권사의 붕괴 도미노로 이어졌다면 그 때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때 대공황 연구 전문가인 벤 버냉키가 FRB 의장으로, 골드만 삭스 회장으로 월가의 생리에 빠삭한 폴슨이 재무장관으로 앉아 있다는 것이 미국의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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