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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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십여 년 동안 유치원에서 선생으로 일한 적이 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이었다. 어려서부터 다닌 교회였기 때문인지 직장이란 느낌도 별로 없이 늘 편하게 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함께 일하는 교사들과 자녀를 맡기는 학부형 모두 가족 같은 분위기로 유치원일이 꾸려져 갔다.
임시 원장으로 처음 유치원 일을 맡았던 이유여서인지, 조용한 성격의 원장 선생님은 대부분의 대외적인 일을 자주 나에게 맡기셨다. 덕분에 학부모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교육지침도 부모들에게 잘 전할 수 있었고 그들의 애로사항도 들을 수 있어서 서로 이해하는 폭이 점점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교사들도 나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거나 처리하기 곤란한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나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교사는 아니었다. 단지 배려 깊은 원장 선생님의 격려 속에서 유치원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대할 수 있었고 그 부모들에게 인생 선배로 때론 언니처럼 다가갔을 뿐이었다.
어느 날 늦은 오후였다. 다른 반 엄마 한명이 내게 찾아왔다. 어제 자기 아이가 집에 와서 담임선생님이 밉다고 하는데 요즘 그 반 선생님이 어떠냐며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가만히 생각하니 짐작 가는 일이 있었다. 담임을 맡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외국인 선생이 어제 저녁 걱정스런 얼굴로 자기반의 문제를 내게 이야기 했었다. 듣고 보니 그 선생은 참 지혜롭게 처리를 했는데 단지 말과 문화가 다른 한국인 부모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염려로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생에게 소신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자신있게 교육을 하라고 격려를 해주었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그 엄마에게 그 반 선생님에 대한 내 생각들을 이야기해줬다. 말을 듣던 엄마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깨를 툭 치며 농담처럼 크게 한마디 더 보태줬다. “ 으이그... 만약 저한테 한 대 얻어맞았다고 와서 얘기하면 ‘오죽했으면... 최선생님이 때리셨겠어. 무슨 맞을 짓을 한 거야, 이녀석아!’ 아마 그렇게 말해 버리셨겠죠?” 그러자 그 엄마는 더욱 환해진 얼굴로 ‘맞아요’ 하며 깔깔거리고 웃어 버렸다.
유치원 꼬마들의 하얀 도화지 같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아이들을 향한 내 마음을 이해해 주던 따뜻한 엄마들이 보고 싶다. 잘난 것 하나 없어도 나를 선생으로 신뢰해 주던 그네들의 사랑이 정말 찐하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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