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역적으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현실적으로나 심리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이다.
지난 2006년 사업차 한국을 방문할 때 바로 위의 언니와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이런 저런 이유로 고국을 자주 방문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지만 두 자매가 고국방문에 동행을 한 것은 미국생활 30여 년만에 처음이었기에 여러 가지로 깊은 의미를 가진 여행이었다.
그때의 일정 중 우리 자매는 임진강 자유의 다리를 방문했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찾아 간 것이 아니었다. 두 자매가 아버지가 살아 계실지도 모르는 북쪽을 바라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곳이 임진강 자유의 다리였다. 육이오 동란 중에 북으로 납치되어 가신 아버지의 생사는 우리가족들의 상상 속에 남아있는 것이 모두이다. 당시의 일을 기억 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었기에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아버지는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존재는 어머니로부터 들어온 이야기가 전부이며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도 없었다. 다만 어릴 때 가끔씩 우리 가족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고작 이었다.
자유의 다리 입구에 도착해서 “이곳까지 오는데 50년”이라고 새겨진 팻말을 읽는 순간 그 메시지는 아버지가 우리 자매에게 “왜 이제 왔니?”라고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처음으로 아버지의 존재가 가슴속에서 살아나면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한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슬퍼 해본 적도 없었다. 당장 임진강 다리를 건너가면 아버지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평생 처음 얼굴조차 기억 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온 전신의 세포가 오그라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슬프게 울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슬픔보다는 분단된 민족 그리고 이산가족의 공통적인 슬픔이 포함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유의 다리가 시작되는 곳에는 남한에 있는 가족들이 북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혹은 우리 아버지처럼 생사를 모르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오색리본에 새겨진 메시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현 주소를 남긴 사람, 가족의 사진을 걸어놓은 사람 또는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을 사진으로 남긴 사람 등등 각자가 자신의 메시지가 가장 눈에 뜨이도록 정성을 드려 만들어놓은 다양한 모양들이었다. 메시지들의 표현이 다양해도 그 안에 담겨진 의미는 한결같이 헤어진 가족에 대한 간절한 마음뿐인 것이다.
동행한 친척이 소주 한 병을 사서 뿌리라는 제안을 했다. 순간 나는 거절을 했다. 아버지의 사망을 인정하고싶지 않아서였다. 술 한잔을 뿌린다는 것은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시하는 젓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차피 나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상상 속에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이었다. 강제로 납치해서 끌어간 사람을 곱게 살려 두었을 리도 없겠지만 북측의 의료 수준을 짐작컨대 구순이 넘은 아버지의 생존을 믿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망을 내 눈으로 확인은 아니라도 믿을 만한 정보를 통해서 아버지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는 아버지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신 것으로 믿고 싶어서였다.
자유의 다리 주변을 돌아보니 그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다 나와 같은 사연이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 중 어는 한사람이 한적한 곳에 혼자 술잔을 동반하고 앉아서 북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서 위로해주는 사람조차 없이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고 실컷 울었을 것 같다. 그 시간 북한 어느 곳에서도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북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개인의 슬픈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육이오 동란을 겪은 지 58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나라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존재 하고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평화통일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지구상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의 간절한 마음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먼 희망의 길이다.
나는 북한 사람들은 미워 할 수 없다, 혹시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우리 아버지 역시 북한 사람 중에 한 분이다. 내가 미워하는 상대는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북한의 “지도자층”이다.
지난주 금강산 관광을 하던 민간인이 북측의 총에 피살을 당했다. 황당하게도 북측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모든 잘못을 희생자 측에게 있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억지 주장은 아무도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평화시에 이런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누구도 예상을 할 수가 없었던 사건이다. 이는 우리가 북측의 “지도자층”을 미워해야 할 이유를 재삼 확인 해주는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