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 소대장 복무 MD 정구창 씨
‘편치볼’ 등 숱한 전투 치러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메릴랜드 베데스다에 거주하는 정구창 씨(78.사진)는 해마다 6월이면 ‘전우야 잘 자라’란 군가를 조용히 불러본다. 벌써 희미해진 가사지만 노래를 부르다 보면 참호 속에서 스러져간 전우들과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척이던, 먹구름 같던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벌써 역사의 페이지가 60장이 넘어갔어요. 6.25사변 내내 참호에서 먹고 자고 싸우고 죽고 했습니다. 참호가 집이었고 전쟁터이자 무덤이었지요.”
정구창씨가 6.25란 괴물 같은 흉측한 현대사와 만난 건 인천공업학교 6년에 재학 중이던 고교 졸업반 시절이었다.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간 그는 전시 장교 양성소인 육군종합학교 29기생으로 입교했다. 1951년 1월이었다. 4개월의 단기 훈련을 받고 전장에 투입됐다. 20사단 61연대 소총 소대장으로, 7사단 8연대 수색 중대장으로 전쟁 내내 그는 최전선에 있었다. 아군과 적군은 중부전선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강원도 양구 일대의 백석산 1230 고지, 편치볼 전투 등 숱한 전투를 치렀다.
“수색대는 빽 없는 군인만 가는 곳이라던데 저는 맨날 수색대만 맡았어요. 부대가 배치되면 우리가 수색을 나가 적정(敵情)을 살폈습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아군이 공격을 하는데 고지를 탈환하게 되면 그만한 기쁨이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30명의 동기생 중 1/3이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의 부하들도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낮엔 우리가 고지를 빼앗고 밤엔 인민군과 중공군이 다시 뺐고 엎치락뒤치락 했어요. 전투하다 부하들이 옆에서 쓰러지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지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그야말로 ‘하루살이 소위’였는데 큰 부상 없이 살아남았습니다.”
53년 7월 포성은 멎었다. 군에 계속 있던 그는 5.16정변이 일어나자 육본 정보참모부에서 상관으로 모셨던 김종필 씨의 부름에 따라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으로 차출돼 2년여를 근무했다. 그리고 민정 이양과 함께 육군 소령으로 예편해 경찰에 투신하게 된다.
경기도경과 서울시경의 정보과장을 지낸 후 부산 서부경찰서장으로 시작으로 용산, 동대문, 동부 서장을 역임했다.
“전쟁터에서나 사회에서나 긴장감을 늦추면 일이 터집니다. 국민의 공복이란 사명감을 갖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자 했습니다.”
1977년 그는 가족과 함께 자녀교육을 위해 도미했다. 그리고 생업에 몰두하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의 기억은 잊고 지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참호의 기억은 다시 새록새록 찾아와 그의 노년을 적시고 있다.
정구창씨는 오는 22일 재향군인회 초청으로 한국을 찾는다. 15년 만의 모국 나들이다. 산업시설도 찾고 특히 판문점이나 안보관광지도 찾는다 한다. 그는 모국에 들르면 만나는 사람들에 자신이 겪은 참혹했던 전쟁의 교훈을 들려줄 생각이다.
“전쟁을 안 겪어본 세대는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인지 잘 몰라요. 휴전이 길어지다 보니 국민들이 안이해졌어요.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생각이지요. 국민들이 하루라도 전쟁을 잊어선 안되며 안보는 평화 시에 챙겨야 하는 겁니다.”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