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권 놓치면 자식도 멀어진다
▶ 노인 존중도 돈 주고 사야하는 세상, “재산은 생전에 절대 나누지 말아야”
아들집에 얹혀살고 있는 달라스의 한인 김모(74)씨는 요즘 한국에 두고 온 문전옥답을 정리해 아들의 사업을 도와야 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자녀 교육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는 아들 내외가 최근 사업에 실패해 재기를 노리는데 한국의 재산 정리를 은연중 바라고 있는 눈치가 역력해서다.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한 김 씨는 요즘 마음의 결정을 못해 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자식에게 한국재산 몽땅 털어주고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해 불쌍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주변 친구 생각하면 거절해야 한다.
그러나 바라만 봐도 힘이 솟는 손자 손녀와 자부눈치가 한없이 마음에 걸려 괜히 미국에 왔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몇 년전 자식 초청으로 달라스에 온 김 씨처럼 재산을 어느 때 얼마만큼 자식에게 증여해줘야 하는가를 놓고 적잖이 고민하는 한인 노인들이 늘고 있다.
정답은 없지만 “죽는 그날까지 경제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반응이 중론이다.
나이가 들수록 절대 지갑을 남에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선배들의 값진 체험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경구다.
한국은 물론 미주한인 사회가 더 이상 노인의 지혜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는 자조섞인 충고에 다름 아니다.
나이 들어 기력이 달릴수록 경제적 주체로 남아 있는 자만이 존중받는 것이 오늘의 노인 경제 현실이다. 소비의 주체로라도 남아야 사람대접을 받는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넘기는 순간 부모자식간의 사이 또한 그만큼 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플래노에 사는 한인 노인 이모(71·여)씨는 그래서 자식사랑의 가치를 다시 고쳐먹은 케이스다.
그는 5년 전 둘째 자식내외 초청으로 이곳에 와서 살고 있지만 영감이 유언으로 남기고 간 한국의 재산만큼은 죽는 순간까지 지키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병이라도 들어 몸져누울 때를 대비해 간병인을 따로 둘 비용과 사망 시 유택비까지 스스로 마련하는 등 자식들에게 일절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씨가 맘을 이같이 정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에서 실제 있었던 실화가 크게 작용 했다고 귀띔했다.
‘어느 노인이 4자녀 앞에서 “여보 당신은 이 통장을 죽는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유언과 함께 통장을 유산으로 남겼다. 4명의 자식들은 이때부터 홀어머니를 경쟁하듯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그러나 몇 년 후 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펼쳐진 통장(유산)은 단돈 5만원이 전부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나서 쓸쓸한 노후를 맞는 한인 노인들의 우매함을 경계해야 된다는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다.
이제는 노인 존중도 돈 주고 사야 하는 세상이 왔다.
노인도 돈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식들의 효심도 사회도 바뀌는 세상이다.
맹목적이고 숭고한 자식사랑에 눈이 먼 노인들에게 진정한 자식사랑은 교육시키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는 새로운 풍속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젊은이도 모두 예비 노인이다. 노인이 되어도 절대 경제권을 붙들고 목소리만 들어도 버선발로 뛰어나와 모시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 갈 때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받아야 할 존중과 대접이다.
사회적인 약자에게 베푸는 존경과 배려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 하지만 경제권을 잃고 나면 죽는 그날까지 자식에게도 눈치 보는 비굴한 노후가 기다릴 뿐이다. 있는 것 모두 주고 비참하게 살다 간 노인들의 전철을 더 이상 밟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산은 생전에 절대 나눠주지 말아야 할 최후 보루다.
<박철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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