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인상으로 학자금 융자 쉽게 10여만달러
빚 같이 떠맡을 부담감에 상대방 파혼 결심도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그에게 거액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까? 부채가 몇 만 달러도 아니고 몇 십만 달러에 달한다면 장차 가정생활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 자명하다.
무모하게 돈을 빌려 흥청망청 써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비가 계속 인상되면서 의과대학이나 일반 대학원을 나오면 학자금 융자액이 쉽게 10~20만달러가 된다. 이런 거액의 부채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 상대방에게 알려야 할지가 남녀관계의 한 이슈가 되고 있다. 연인의 빚 때문에 파혼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에서 X-레이 테크니션으로 일하는 앨리슨 브룩 이스트만(31)은 최근 파혼을 당했다. 원인은 빚이었다.
아무도 기분좋지 않은 일로 놀라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4개월 전 앨리슨의 약혼자는 그런 놀람에 대해 좀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 앨리슨의 학자금 융자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나서 사흘 후 파혼을 통보했다.
앨리슨은 그와 데이트를 시작할 당시 10만달러가 넘는 빚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신 부채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 지를 알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산 사람이 융자받은 전체 액수 보다 매달 갚아야 할 금액에만 신경을 쓰는 것처럼 그는 학자금 융자 상환액으로 매달 1,100달러를 낸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매달 내야 하는 최저 선이었다. 앨리슨은 그 보다 깊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빚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우울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혼식이 가까워지면서 그는 융자 서류를 모두 꺼내 검토했고 그 결과 총 부채가 17만달러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고 X-레이 테크니션이자 파트타임 사진가인 앨리슨은 말한다. 그 많은 부채는 사진전공 대학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쌓인 것이었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면 그건 그에게 한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한 것이지요. 부채 총액을 정말이지 알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에요”
대학이나 대학원 재학 중 얻은 학자금 융자, 혹은 재혼의 경우 이전 결혼에서 쌓인 부채 등 금전문제로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로가 각자의 부채를 감추지 않고 상세히 공개한다 해도 그 액수가 클 경우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녀가 만나서 데이트를 할 때 거액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 밝혀야 할까? 예를 들어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보다 더 일찍 밝혀야 하는 걸까?
빚으로 인해 결혼이 깨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상당히 애매한 문제들이 생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거액의 빚을 안고 결혼한다면 그 빚을 갚아야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문제이다.
결혼할 애인의 빚이 17만달러나 된다면 상대방은 같이 돈을 갚으면서 두고두고 원망할 것이 뻔하다. 결혼 후 집을 사는 문제에서부터 아이를 몇 명이나 낳느냐의 문제까지 모든 재정적 결정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아 의과대학 3학년생인 케리 티드웰(26)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 중이다. 응급실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인 케리는 의대를 졸업하고 나면 학자금 융자액이 25만달러에 달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의사가 되고 나면 그 돈을 갚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케리는 현재 비엔나에 사는 오스트리아인 건축가, 스테판 코글러와 깊은 관계이다. 유럽에서는 대학 교육이 거의 공짜이거나 학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공부하느라 산더미 같은 빚을 진다는 것이 유럽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다.
케리의 학자금 융자액은 런던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할 때의 학비를 포함한 것으로 이때 스테판을 만났다. 케리는 빚이 25만달러나 된다고 해서 전혀 죄책감 같은 것은 없다. 놀러 다니거나 샤핑 하느라 빚을 진 게 아니라 평생 좋아할 일을 공부하느라 진 빚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테판과 동거를 하고 약혼을 하게 될 경우 그는 재정적 문제를 분명하고 공정하게 할 생각이다. 한편 스테판(30)은 빚 문제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갚아나갈 생각이다. “당장은 내가 능력 닿는 한 그녀를 지원하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공평해질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우자가 25만달러나 되는 부채를 안고 있을 경우 생활에 많은 제약이 올 것은 뻔하다. 결혼 후 미국으로 이주한다면 스테판은 오스트리아의 가업을 잇지 못하게 될 것이고, 달리하고 싶은 일이 있어 직업을 바꾸고 싶어도 보수가 많이 줄어드는 분야는 택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보스턴의 랜턴 파이내셜의 재정계획 전문가인 리사 피터슨은 젊은 부부들을 주로 자문하는 데 고객 중 절반 정도는 상당한 액수의 부채를 안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 생각지도 않은 부채 부담을 같이 떠맡게 되는 상대방은 많은 희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상대방이 추구하는 생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부부가 재정 계획을 짜는 것이 공평하다고 그는 조언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케리는 의사가 되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몸을 다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자녀가 생기면 일정 기간 전업주부로 집에만 있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결혼에 앞서 이 모두를 구체적으로 의논할 것을 재정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커플들이 결혼 전에 이렇게 상세하게 재정문제를 털어놓고 의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전 계약의 한가지 좋은 점은 이런 문제들을 다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혼 커플의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각자 가진 재산, 부채 등을 다 공개하고 어떻게 처리할 지를 법적 합의를 통해 정해야 나중에 분란이 생기지 않는다.
<뉴욕 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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