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서울의 가을 하늘은 맑았고 나뭇잎들은 붉은 빛을 뿜어내며 마지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던 어느 날 우리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사색의 깃털을 세우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그때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낙엽 사이에서 허름한 모자를 눌러쓰고 바이올린을 켜던 초라한 모습의 아저씨 한 분을 보게 됐다.
그는 오가는 사람들의 인정의 그릇 하나 앞에 두고 ‘타이스의 명상곡’ ‘G 선상의 아리아’ 그리고 ‘바위고개’를 반복해서 켜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이상하게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파고들어 알 수 없는 서러움을 안겨주고 어쩌다 울컥 눈가에 물기마저 몰고 왔던 기억이 새롭다. 어쩌면 그는 지친 우리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곡(鎭魂曲)을 켜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설픈 그의 바이올린 소리에도 우리는 감격해서 주머니에 있던 돈을 털어 내려놓고 가까이 시멘트 둔턱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현자라는 친구가 “우리 모두 절에 들어가서 스님이 될까?"라고 물었다. “아니 얘가 무슨 소리야 " “갑자기 스님이 왠 말? " 모두들 놀라자 그 애는 “너희들 절에 가면 지붕 처마 끝에 달려있는 나무 물고기를 본적이 있니?”라고 물었다. 그런 다음 “우리가 절에 가면 먼저 가죽을 가진 모든 짐승들을 위해 둥둥 몸으로 서럽게 운다는 법고(法鼓)가 울리지. 오래전 옛날에 한 절에 어지간히도 말을 듣지 않던 애기 스님이 계셨는데 나이가 들었는데도 스승인 주지 스님의 말은 따르지 않고 무조건 모두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는 거야. 그러다 그가 병이 들어 죽었는데 물고기로 다시 환생 했다 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이 물고기의 등에 커다란 나무 하나가 자라기 시작했다는 거야. 헤엄을 잘 칠 수도 멀리 갈수도 없던 그는 어느 날 강을 건너던 배 위의 스승님을 보게 되었지. 그래서 그는 다가가서 스승님께 백배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지. 절로 다시 돌아오신 스승님은 그 물고기를 위해 수륙재(水陸齋)를 지내주니 이상하게 물고기 등에 있던 나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야. 그 이후 일설에는 물고기가 밤낮을 눈을 감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서 수도하시는 스님들을 깨우는 도구로 쓰느라 절의 지붕 끝마다 달아 놓게 된 거지. 그래서 스님들이 항상 눈을 뜨고 수도하지 않으면 등에 나무가 자랐던 얘기도 기억하고 부디 수도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나무 물고기, 목어(木魚)는 이렇게 해서 알려졌다고 했다. 엄마를 따라 절에 너무 많이 다닌 것 아니냐며 우리 모두 현자를 놀려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을이 되면 지금은 아득히 잊혀진 지난 세월들이 나의 소녀 시절의 소중한 추억 속 한 페이지 공간이 되어 쏟아지는 가을 햇살 속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세월이 지나가며 문득 애증, 희로애락, 그리움도 조금씩 무디어져가고 초연해짐은 나이 탓일까. 이 가을 모든 것들에 대한 풍성함과 건강함에 감사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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