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 곳에 女人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 김광균(1914 - 1993) ‘설야(雪夜)’ 전문
이 시의 백미는 역시 ‘먼- 곳에 女人의 옷 벗는 소리’일 것이다. 시각과 청각 이미지를 통해, 동시에 눈 내리는 ‘소리를 보여주고’, 눈 내리는‘풍경을 들려준다.’ 눈이 내리지 않는 LA의 도심에도 모든 불빛과 소음을 죽이고 눈 내리는 밤이 온다. 호롱불과 여인,‘싸늘한 追悔(추회)’까지도 그리운 것들이라면 무엇이든지 시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생생하게 데려온다.
<김동찬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