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끄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을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이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끄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까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최승호 (1954-) ‘대설주의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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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산골, 가난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정치라는 말도 계엄령이란 말도 정의나 저항이라는 말도 아직 이르지 않은 곳, 그 곳에 눈발이 내린다. 군단처럼, 해일처럼, 달려오는 은하의 별무리처럼 , 계엄령처럼, 저지 불능의 속도로 하얗게 밀려온다. 무엇인가 불안하여 뒷간에 숨는 조그만 굴뚝새. 그것이 세기의 폭설이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든 눈먼 권력의 횡포이든, 저 낮은 곳 때를 준비하시는 순한 사람들을 다치지 마시라.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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