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부터 꼭 23년 전, 그날도 이렇게 소나기가 마구 퍼부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듣고 기막혀 분노했던 그날의 추억이 자꾸 슬픈 연민의 늪으로 빠져든다. 10년의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하고 첫아들을 낳아 첫돌 며칠을 앞둔 어느 날, 모두가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의 엘리트로 잘나가던 신랑이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당한 슬픔을 어떻게 이겨야 하나 울부짖던 친구는 아기와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남편이 남겨놓은 자금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기 시작할 즈음 자신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서 종종 회의가 생겼고, 앞으로의 생활 진로에 대한 갈등 속에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서양 속담에 “하늘이 비를 내리기로 결정하고 어머니가 재혼하기로 마음먹으면 막을 도리가 없다”고 했는데 주위에서 그렇게 말렸는데도 친구는 어린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캐나다를 경유 어렵사리 미국에 왔다. 처해있는 현실이 힘들고 버거워도 영주권 받고 다시 만난다는 희망으로 이를 견뎠다.
그날도 영주권 수속을 위해 변호사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어처구니없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차량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뺑소니 차였다. 연고자 없이 노동허가서만 받은 신분으로 시립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허겁지겁 찾아간 나는 독방에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눈은 초점을 잃고 목과 양팔에 연결된 흰 붕대로 매어져 양팔이 좌우로 허공을 향해 기계처럼 허우적거리는 몰골로 변한 괴물(?) 이 되어 있었다. “너, 이 꼴로 병원에 누워 있으려고 미국 온 거 아니잖아. 말 좀 해봐, 이 바보야.” 소리치며 떼를 썼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는 알았나보다. 심장박동 모니터에 그려지는 파장이 갑자기 널뛰기를 한다.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수속해 온 아들,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던가. 그러나 아들과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어처구니없는 삶의 종말을 맞고 말았다.
유일한 자기의 분신인 18세의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는 엄마의 기막힌 운명, 화장터에서 한 줌 재로 변한 상자를 품에 안고 오열하는 아들. 엄마 없는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들의 처지. 이보다 더한 기막힌 이별이 또 있을까.
양친부모 안 계신 고국에 돌아갈 용기가 없어 먼 친척집에서 불체자의 신분으로 지낸다는 소식이었는데… 이국땅에서 뼈저린 외로움을 견디며 힘겹고 슬픈 청춘의 세월을 씩씩하게 이겨낸 Joon아! ‘우리의 최대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 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란 공자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나도 가만히 지나쳐간 나의 인생길을 뒤돌아보면 때로는 방황하고 어려움 속에서 좌절의 순간을 느낀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40여년의 이민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으니까. Joon아!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 먹은 만큼 행복해진다”고 링컨은 말했다. 큰 소망을 갖고 모든 일에 부지런하고 진실된 삶, 복된 삶을 위하여 무던히 노력하는 날들이기를 기도하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