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서 일본 종군 위안부 피해 증언한 김복동 할머니
▶ 200여 관중 눈시울 붉혀
사진: 25일 열린 강연회에서 위안부 생존자 김복동 할머니(좌)가 자신의 비참했던 경험을 증언하고 있다. 우측은 통역을 맡은 최인혜씨.
“일본 정치인들이 막말할 때마다 내 가슴이 미어진다. 해방되고 수년이 지나도록 고향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짓밟힌 우리의 한을 누가 알아주노. 보상금이 탐나는 게 아이다. 죽으면 내가 돈을 짊어지고 갈끼가. 일본정부가 과거 죄 뉘우치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사죄하면 그걸로 된기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김복동(88) 할머니가 시카고를 찾아 당시 처절했던 상황을 전하면서 세계인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에 강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가슴 찡함과 함께 눈물을 훔쳤다.
시카고여성핫라인이 주관하고 엔젤리나 페드로소센터와 노스이스턴대학이 후원한 ‘평화를 위한 외침: 일본군 위안부가 우리에게 남기는 유산’이란 제하의 강연회가 지난 25일 시카고시내 노스이스턴대학 리사이틀홀에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시력이 좋지 않은 김복동 할머니는 이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윤미향 대표의 손을 꼭 잡고 강연장을 찾았다. 이날 강연회는 지난 5월 일리노이주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후 위안부 문제를 더욱 더 알리기 위해 여성핫라인이 한국의 정대협측에 의뢰해 성사됐다.
강연장 입구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 14점이 전시됐다. 200여석 강당은 자리가 모자라 일부 인원은 서서 강연을 경청하기도 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카고의 현지 관심을 증명해보였다. 강연 전 위안부 할머니들의 활동을 담은 ‘나비, 희망으로 날다’ 영상이 스크린을 통해 나오자 사람들은 집중했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김복동 할머니는 여성핫라인 최인혜씨의 동시통역으로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경남 양산이 고향인 김복동 할머니는 만14세 되던 해 일본군 군복공장으로 일하러 보내주겠다는 얘기에 속아 당시 ‘근로정신대’로 보내졌다. 공장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전 재산을 몰수하고 외국으로 추방시킨다는 협박도 있었다. 딸만 여섯이던 집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언니 셋은 시집갔고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김복동 할머니는 학교도 그만둔 상황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위안부 생활은 지옥이었다. 일본군 사단본부를 따라 대만을 거쳐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인도네시아, 자바, 싱가폴 등지를 전전했다. 김 할머니는 “토요일은 정오부터 오후 5시, 일요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군인들이 줄서 있었다. 죽으려고 마음도 많이 먹었는데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더라. 나중에는 어떻게든 고향에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토로했다. 패전의 기미가 보이자 일본군은 위안부들을 간호원으로 위장하기 위해 군병원에서 간호훈련을 시켰다. 해방후 싱가폴에서 미군에 잡혀 포로가 된 김 할머니는 이후 미군수용소에 수감되었고 몇달후에야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가족들은 전쟁터에서 8년을 보내고 집으로 온 딸이 공장에서 일하다 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 혼기가 찬 딸을 어머니가 시집보내려 하자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앓아누운 어머니는 얼마를 못 버티고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이후 김복동 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남자’라면 진절머리가 났다고 고개를 저었다.
1992년 일본군위안부로 국가에 등록한 후 UN이 주최한 비엔나세계인권대회 여성인권포럼에서 위안부 생존자 발언, 정대협과 함께 일본검찰에 위안부 문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소장 제출, 한국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 집회에 27년을 참여하는 등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기 위해 활동해왔다. 현재 정대협이 운영하는 쉼터에서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일리노이주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한국에서 들었다는 김복동 할머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알려야한다. 타지에 있는 사람들도 주변인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얘기를 나누다보면 문제점이 부각될 수 있다. 전쟁 희생자는 우리뿐 아니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종전 후 반세기동안 일본은 사실을 숨겨왔고 지금은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가부장체제의 사회에서 희생자들은 침묵을 지켜야했고 고문 등 피해후유증으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피해자가 요구하기전 가해자가 먼저 사과하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회에 참석한 미아 로건씨는 “위안부와 같은 문제는 미국 학교 교과과정에서 전혀 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안쓰럽고 슬퍼 눈물이 많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대협은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을 위한 ‘나비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기금은 현재 오랜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콩고의 성폭력 피해여성들과 베트남전 피해여성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나비기금 기부 문의는 이메일(war_women@naver.com)으로 할 수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womenandwar.net)를 참조하면 된다. 김복동 할머니는 28일 LA로 이동해 지역 여성단체 등과 간담회를 가지며, 30일에는 글렌데일시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에 참여한다.<홍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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