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판을 꼽으라면 단연 ‘솔로몬 왕의 재판’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 상인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 대한 재판’을 꼽을 수 있다. 보통 재판이란 증거와 증인 그리고 계약조건에 의해 판결난다. 그래서 심증이 아무리 확실해도 물증이 없으면 죄를 징계할 수 없는 것이 재판의 한계다.
명재판이란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솔로몬 왕은 친모를 확인해 달라는 재판에서 모성애의 본질을 지혜롭게 시험해 봄으로써 누가 친모인가를 가려낸 명재판이었다. 그런가하면 샤일록에 대한 재판은 계약조건상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았던 점을 변호사가 날카롭게 찾아내 판결을 뒤집었다. 가슴의 살을 한 파운드나 잘라내면서 누가 피를 흘리지 않고 살만 도려낼 수 있겠는가…‘베니스의 상인’은 400여년 전 당시 유럽사회에 팽배해 있었던 반 유대정서를 적나라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수전노였고, 그에게 돈을 빌린 안토니오는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의리의 사나이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살을 한 파운드 잘라내겠다는 계약은 마치 흡혈귀처럼 사람들의 돈을 착취하고 있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20세기 독일 나치정권은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베니스의 상인’을 정기적으로 공연하면서 샤일록과 같은 유대인들은 모조리 죽여 마땅하다는 반유대주의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600만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에 셰익스피어가 자신도 모르게 한 몫을 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또 한 번 이상한 방향으로 ‘베니스의 상인’에 대한 재해석이 이뤄지고 있다. 2005년도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이 알 파치노의 명연기를 내세워 ‘베니스의 상인’을 영화로 새롭게 선보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샤일록은 건전한 자본가이고, 안토니오와 그의 친구 바사니오는 우정과 사랑을 가장한 기회주의자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줄거리를 그대로 사용한 것 같지만 곳곳에 원작자의 의도를 뒤집어놓은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특별히 목숨까지 담보로 잡힐 수 있었던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이 이 영화에서는 저들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그려내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현대 미디어는 돈 있는 자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대인들의 손에 있다. 할리웃 영화는 대중문화 코드를 만들어내는 산실인데 오늘날 저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코드는 민족우월주의, 동성애 옹호, 포스트모더니즘이 행간에 숨어 있는 메시지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작품이나, 영화 또는 음악에서도 창작의 순수함이 그리운 시절을 살고 있다.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도서협찬: 반디북US(www.bandibook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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