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필자가 특전사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의 일이다. 12월께 제주도에서 훈련을 병행한 지역 방위를 할 때였다. 하루는 산굼부리 쪽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고 무전이 왔다. 가서 보니 하사관 한 명이 갑작스런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통증이 더욱 심해지고 특히 왼쪽 어깨 쪽으로 퍼져나가는 양상이었다.
20세 중반의 젊은이였고 평소 가끔씩 소화불량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병력이 없었다. 심장과 폐 청진 때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혈압, 맥박 및 체온도 정상이었다.
긴급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알아둔 인근 해병대 의무대로 호송하여 구체적인 검사를 하였다. 마침 의무대에 대학 동창이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심전도를 실시하였으나 정상이었고 급성 심근 경색증, 부정맥, 협심증 또는 급성 심낭염의 소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시행한 흉부 X-선 검사에서는 횡격막 하부에 공기가 모여 있는 프리 에어(free air)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는 장 천공 때 장에 있는 공기가 빠져나가서 횡격막 하부에 검은색 공기의 음영이 생기는 것이다.
즉시 인근 군 병원으로 후송하여 응급수술을 시행하였다. 병명은 소화성 궤양으로 인한 십이지장 천공이었으며 십이지장 봉합으로 수술은 완료되었다. 그 후 군 병원에서 회복기간을 보내고 부대로 복귀하여 군 생활을 계속하였다.
장 천공 때 장에서 유출된 공기나 음식물 등이 횡격막 하부에 축적되면 횡격막 신경을 자극하게 되는데 이때 신경의 분포상 왼쪽 어깨 쪽에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사례는 필자가 천리행군이라고도 하는 전술 종합훈련을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지리산 일대에서 훈련 중 한 병사가 이틀간의 점점 심해지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였다. 촉진을 해보니 갈비뼈의 연골과 경골이 만나는 관절 상의 통증이 발견되었다. 완전 군장으로 수 일간 행군을 실시한 후라 늑골 관절염(costochondritis)으로 판단되어 늑골 관절 부위에 소염 진통제 주사요법을 시행했다. 그 병사는 즉시 통증이 완화되었고 이후 단독 군장으로 전환하여 무사히 훈련을 마쳤다.
일반적으로 급성 가슴 통증은 심근경색, 협심증 등 관상동맥 질환이나 심낭염 등 심장질환을 원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폐동맥의 혈전이 원인이 되는 폐동맥 색전증이나 중증 역류성 식도염, 드문 경우 대동맥 박리가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예들에서처럼 장 천공이나 늑골 관절염 등에서도 급성 흉통의 소견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장 천공의 경우 위장이나 대장보다는 장벽이 얇은 십이지장 또는 소장의 천공이 많으며 소화성 궤양이나 장 수술의 병력이 있는 경우 의심할 수 있다.
이처럼 급성 흉통은 다양한 원인으로 야기될 수 있으며 통증이 심하거나 지속될 경우 곧바로 응급진료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끝으로 필자가 군 복무 때 군의관으로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신 옛 대대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동현 내과 (213)739-8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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