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보수를 대변하는 경제지 월스트릿 저널도 트럼프에 완전히 질린 모양이다. 얼마 전 사설을 통해 트럼프의 트위터 행각을 신랄히 비판하면서 그가 계속해 과장과 증거 없는 비방, 터무니없는 부인, 그리고 거짓을 일삼을 경우 미국인들은 ‘가짜 대통령’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루퍼트 머독 소유인 월스트릿의 이 같은 논조는 보수주류의 트럼프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백악관에 들어가서도 진실과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를 지속하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 주 LA타임스가 4회에 걸쳐 ‘트럼프의 문제점’이라는 주제의 사설을 시리즈로 게재했겠는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인식의 세계에 갇혀 온갖 엉뚱하고도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는 트럼프를 보고 있자면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트럼프는 어쨌든 미국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다. 그가 떠벌린 황당한 주장들의 진위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묻지 마’ 지지를 보낸 일부 극성 계층이 그를 백악관 주인 자리에 앉혔다. 거짓과 허위 주장임이 명백한데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믿어버리려는 집단적 태도는 이처럼 종종 사회를 큰 위험에 빠뜨린다.
허황된 주장을 손쉽게 믿어버리는 성향이 유독 강한 사람들이 있다. 누가 ‘음모론’에 취약한지를 연구하고 분석한 최신 뇌 과학의 결론이다. 수구적일수록 더 그렇긴 하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백신이 아이들의 자폐증을 초래한다”는 등의 황당 주장을 맹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처럼 인간은 사실과 픽션을 잘 구분해 내지 못한다. 이런 문제점은 분열적 이슈들이 범람하는 정치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개개인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만큼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갖지 못할 경우 결국 의존하게 되는 것은 커뮤니티다. 인터넷 시대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바로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커뮤니티를 잘못 선택하게 되면 끊임없이 왜곡된 정보를 주입받게 되고 그러면서 인지의 왜곡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최근 온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 ‘가짜 뉴스’는 대표적인 사이비 콘텐츠이다.
그럴듯한 형식을 갖춰 거짓을 퍼뜨리는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국민들은 진실과 사실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카톡에 뜬 “헌재 재판관들이 20억원씩을 받고 탄핵 인용을 했다”는 터무니없는 콘텐츠를 읽자마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욕설부터 내뱉는 국민은 가짜 뉴스들이 노리는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다.
선동꾼들과 이념적 극단주의자들, 그리고 사기꾼들만이 이런 가짜 뉴스를 만들어 뿌리는 것이 아니다. 정통 언론을 표방하는 미디어들에도 교묘한 편집과 왜곡을 통해 본질을 흐리거나 비트는 ‘유사 가짜 뉴스’들이 넘쳐난다. 5월 ‘장미대선’을 앞두고 특히 이런 뉴스들이 판치는 것을 보게 된다.
가짜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물론 이런 노력이 쉬운 건 아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정보에는 배타적이고 인색하게 구는, ‘인지적 구두쇠’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적 구두쇠는 우리가 좀 더 깊게, 그리고 좀 더 넓게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인지적으로 인색하게 굴 것이 아니라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편견과 가짜 뉴스, 가짜 정보의 덫을 피해갈 수 있다.
가짜 뉴스를 신봉하고 이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뽑는 대통령은 ‘가짜 대통령’일 개연성이 높다. 명백한 진실과 증거 앞에서도 “모든 게 다 가짜”라고 우기는 대통령 말이다. 제대로 된 ‘진짜 대통령’을 뽑고 싶다면 유권자들부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해 낼 줄 아는 ‘진짜 유권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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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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