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위는 대부분 경제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그것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아니면 아무런 실익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가 되느냐를 따져 결정한다는 말이다. 편익(혹은 이익)과 비용(대가)은 경제적 합리성을 판단하는 데 들이대는 두개의 잣대이다. 그리고 그 이익이나 부담이 즉각적일수록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당장의 이익이라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마시멜로 실험이 확실히 보여주었다. 또 당장의 비용 역시 장기적 이익보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장기적인 득실을 면밀히 따져보기 보다는 당장의 이익이나 부담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갈수록 투표율이 낮아지면서 대의민주주의 위기를 자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투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 합리적인 행위는 되지 못한다. 현명하게 표를 던지려면 누구를 찍을지 후보들 면면과 그들의 정치적 입장, 정책들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일단 후보를 결정해도 선거 당일 투표장에 나가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참정권의 소중함은 잘 알지만 그것을 행사하는 데는 정신적 물리적으로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에 반해 투표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은 비용에 비해 불분명하다. 비용은 당장 와 닿지만 편익은 나중에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 투표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라는 회의적인 생각까지 고개를 들면 투표장에 나갈 마음에 생기지 않는다. 그동안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를 분석해 보면 고령층은 투표의 편익을 비용보다 크게 여긴 반면, 젊은이들은 비용을 편익보다 크게 여겨왔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투표만은 비용과 편익의 문제가 될 수 없고 또 그리 되어서도 안 된다. 투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확인시켜주는 절차이자 주인이 주인다워지는 유일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화 ‘변호인’과 탄핵 정국을 통해 거의 모든 국민들이 외우다시피 하게 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 소유를 다른 이에게 위탁하면서 “누구라도 좋다”는 식의 무관심을 보이는 것은 주인다운 태도가 아니다. 성경에는 청지기의 비유가 나온다. 선거는 국민들이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청지기를 골라 자신의 것을 맡기는 절차이다. 너무나도 중요한 책임을 맡을 사람을 고르는 일임에도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양 방기한다면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따지고 분노할 자격이 과연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헌법은 불성실하고 부도덕한 청지기를 파면한 권리를 주인에게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했듯이 이 과정은 엄청난 국력의 소모와 상처를 안겨준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대로 된 사람을 잘 골라 뽑는 것이 중요하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정치인들은 국민들 눈치를 보게 돼 있다. 감시의 눈이 그만큼 매섭게 작동하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상 첫 흑인대통령으로서 8년 임기를 마치고 떠난 오바마는 눈물의 고별사를 통해 국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 헌법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헌법은 “아무런 능력이 없는 양피지 쪼가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 유권자들을 향한 호소로 들린다. 19대 한국대선을 위해 등록한 LA지역 1만3,631명, 미주 6만8,244명 유권자들이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투표에 한명도 빠짐없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죽어있는 양피지 쪼가리로 만드느냐, 아니면 민주주의의 생생한 소유권 확인증서로 만드느냐는 오로지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달려 있다. 그리고 편익과 비용으로 따져볼 때도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이득이 되지 않는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했던 2,500년 전 플라톤의 경고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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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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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호구는 진상을 만든다. 호구가 되지말자!!
멋진 글이네요.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면 자기 보다 못한 사람에게 지배를 받는다.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재미만 따라 다니니 결국은 트럼프 같은자에게 지배를 받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