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격랑에 휩싸인 대한민국을 이끌고 갈 새 지도자로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됐다.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마냥 들뜬 분위기에 젖어 있기에는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작금의 상황이 너무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반년 이상 지속돼 온 혼란과 국정 공백에 따른 여파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은 이런 혼란을 조속히 수습해 국가를 다시 제 궤도에 올려야 하는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다. 대통령들에게는 그들을 선출한 시대가 요구하는 각각의 소명이 부여된다. 비상한 상황에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그만큼 비상한 역할이 주어져 있다.
그 첫 번째 소임은 국가적 상흔의 치유이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으로 한국사회는 정서적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 상처가 깊을수록 치유는 쉽지 않고 상흔도 오래 간다. 그렇기 때문에 새 대통령은 어떠한 머뭇거림도 없이 상처를 보듬는 일에 즉각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과반에 크게 못 미치는 지지로 당선됐다. 전체 유권자 수에 대비해 보면 지지율은 더 내려간다. 대선 후 정치적 환경은 새 대통령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정치적 입장과 이념적 차이를 초월해 ‘협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협치는 정치적 필요뿐 아니라 국가적 치유를 위해서도 바림직하다.
대선 캠페인 전략과 국가운영 전략은 달라야 한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현직인 존 애덤스와 치열한 싸움 끝에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 후유증으로 미국은 두 동강 났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공화주의자들이다. 우리 모두는 연방주의자들이다.” 제퍼슨은 통합을 위한 큰 정치를 추구했다.
캠페인은 상대가 있는 경쟁이지만 국가운영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국민적 역량을 결집시키는 통합의 과정이다. 그런데도 많은 대통령들은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해 정치적으로 실패하고 개인적으로 추락했다. 독선과 오만에 취해 ‘승자독식’의 함정에 빠진다면 새 대통령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직 대통령들의 전철뿐이다.
두 번째 소임은 민주주의 가치의 회복이다. 시대적 패러다임과 동떨어진 몇 몇 대통령들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가치는 크게 손상되고 퇴행했다. 이 가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크고도 중요한 과제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적 선언을 일상의 규범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한 처방은 단 한가지이다. ‘겸손한 권력’이 되는 것이다. 군림하는 게 아니라 낮아져야 한다. 대한민국을 병들게 한 모든 적폐의 한 가운데는 비뚤어지고 오만한 권력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흔히들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국을 망쳐왔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본질적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국민을 받드는 겸손한 정치를 통해 새 대통령이 증명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구조적으로 소통을 막고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한 청와대를 벗어나 정부종합청사에 자신의 집무실을 두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언제쯤 실천에 옮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과거 대통령들의 제왕적 행태를 벗어나는 획기적인 조치가 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된다. 하루속히 그 모습을 보고 싶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책임이다. 아무쪼록 새 대통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대권’(大權)이 아니라 더할 수 없이 커다란 책임, 즉 ‘대임’(大任)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겸손하게 국가운영의 소임을 성실히, 그리고 지혜롭게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조윤성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