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를 가보면 참 슬프다. 1500여년 전 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상강국의 궁전과 건물들이 물 위에서 무너지고 삭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슬픔이 아름답다. 작은 도시국가의 천연자원은 소금뿐이고 경작지도 없었기에 무역선을 건조하고 해외교역 최강자가 된 불굴의 개척정신은 대단하다. 강대국에 맞서고자 베네치아 대사들은 꼼꼼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외교활동을 했다고 한다.
파리 주둔 베네치아 대사가 미국 대사로부터 받은 외교문서를 역사소설가 시오노 나나미가 베네치아 이야기에서 소개한 것을 인용한다.
당시 미국은 1776년 7월4일 독립선언과 함께 국호를 미합중국으로 했으나 의회, 연방정부, 대통령도 존재하지 않았다. 1783년 미국독립을 승인한 파리조약 6년 후인 1789년에야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니 유럽 나라들에 대사를 보낼 엄두를 못 내었다. 아래 내용은 프랑스에 온 미합중국 사절단이 파리조약 조인 종료 후 프랑스에 머무를 때 미 독립전쟁 동안 중립을 지키던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에게 보낸 문서다.
‘대사 각하, 대륙회의에 모인 각 주의 대표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에 평등과 상호 이해와 우호에 입각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리라는 결론에 달했습니다. 지난 5월12일자로 양국 간 우호 통상조약을 체결함에서 교섭은 주불 대사이신 각하를 통해 제의하도록 저희에게 지령이 있었습니다. 대륙회의는 저희에게 교섭의 전권을 일임했으며, 교섭은 귀국 정부의 허가가 내리면 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본국 정부의 의향을 밝혀주실 것을 바라는 바입니다. 미합중국 사절 존 애덤스, 벤자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
이 외교문서에 후일 제2대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 제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 100달러 지폐의 인물 벤자민 프랭클린 이름이 나란히 나온다.
20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고 세계인들이 그 이름을 안다. 그러나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 이름은 다니엘레 돌핀, 그 이름을 아는 자는 거의 없다. 다만, 이 젊은 외교관은 본국 정부에 외교문서를 보내면서 ‘미합중국은 장래 세계에서 가장 두려워할만한 힘을 지니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는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고 한다.
신생국가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외교전선에 나섰던 이 3명 외에도 10달러 지폐 모델인 알렉산더 해밀턴, 대법원 초대장관 존 제이, 버지니아 권리선언의 조지 메이슨, 독립선언을 기초한 5인 중 한명인 로버트 리빙스턴,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연설로 유명한 패트릭 헨리 등등 미 건국의 아버지들은 널리 알려져 있고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누구이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대한민국은 진보진영은 1919년 4월13일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보수진영은 1948년 8월15일 광복절을 건국일로 보고 있다. 시점을 언제로 보는 것은 중요치 않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정부 주요직에 이동녕, 안창호, 김규식, 이시형, 최재형, 이동휘 등이 임명되었다. 이 중 초대부통령을 지낸 이시형의 6형제는 한일합방이 되자 전 재산을 정리하여 일가족 40명이 만주로 갔다. 이회영이 중심이 되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금에 앞장섰다.
임시정부 요인뿐 아니라 신익희, 김성수, 이범석, 김병로 등 많은 이들이 건국을 위해 힘썼다. 또한 김구, 여운형도 있고 최근 들어서 재평가에 들어간 조봉암, 약산 김원봉도 있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승만 외에도 많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있는 것이다. 해방 직후 이데올로기와 주도권 경쟁으로 빚어진 분열로 인해 한국사가 정립되지 못했다. 이들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와 이름을 찾아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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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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