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란 나이를 스스로 맞이하느라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이젠 남편이 선물한 60송이 장미가 아무리 물을 갈아 주어도 고개를 숙인다. 그래도 내 머리 속은 아직도 현실이란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그동안의 삶을 감사함으로 정리하며 한땀 한땀 치유의 바느질을 하느라 분주하다. 삶이란 게 그렇지. 내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이제부터라도 다시 잘 출발하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책 한 권은 써야 해! 하고 늘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 인생의 이름표는 “용기”가 아닌가 싶다. 어릴 적 5살부터 엄마의 손에 이끌려 피아노를 배운 것이 동기가 되어 예술 학교를 거쳐 음악을 전공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생의 꼭지점마다 나의 용기 있는 결정이 따라야 했었다.
워낙 성격이 여리고 겁도 많아 툭 하면 울음이 터져 수도꼭지가 별명이었던 나. 독립심은 바닥이고, 무대 체질이 아니라서 연주할 때마다 바들바들 떨며 악몽을 꾸어야 했던 나. 그런데, 부모 형제를 멀리 떠나 미국으로 가야 하는 결혼을 시작으로 나에게는 용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무너진 건강으로 몇 번의 수술 끝에 찾아온 갱년기 즈음, 용기는 가장 멋진 위로의 친구였고, 음악인에서 재정 설계사로서의 전환점에서 용기는 자신감을 선물해 주었다.
사람은 평생을 가지고 갈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 시절 수도꼭지였던 내가 어느새 “용기”라는 옷으로 덧입혀진, 더 이상 연약한 여인만은 아닌 모습이 되어, 지금은 행동 대장으로 가족들과 모임, 직장에서 용기 있고 씩씩하게 고고씽! 을 하고 있다.
글쎄, 세월이 만들어 놓은 억척이 아줌마가 되어서일까. 때때로 결정 한번 하려면 왜 그리 어려운지 파 한 단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고, 100명 이상의 청중 앞에서 재정 세미나를 하려면 긴장감으로 바짝바짝 속이 타들어 가는 옛 근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내 안에 존재하는 용기는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일등공신이다.
앞으로도 나는 이 용기를 내 인생에 계속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생각의 90%가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이라고 누군가 말했기에, 연약함에 굴하지 않고 황혼기의 정문 앞 이 시점에서 나는 “용기”라는 입장권을 꺼내어 들고 성큼성큼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해보자! 너는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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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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