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있는 TV는 어쩌다 뉴스나 일기예보를 볼 때만 잠깐 보고 한국 채널이 없다. 고국 소식이 궁금할 땐 주로 SNS를 통해 보는데, 어느 날 바로 아래쪽에 ‘궁합’ 이라는 제목의 화면이 있길래 무심코 클릭해봤다.
젊고 아름다운 무당이 속 궁합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론과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얘기하는데 매우 설득력이 있다. 아직 미혼인 듯한 젊고 아름다운 그 여인이 말하기를 결혼생활이 행복 하려면 속 궁합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 결혼을 안 한 젊은이들은 비익조처럼 서로의 반쪽을 찾아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비익조가 뭘까?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어리둥절한 채 문자를 쓰는 그 무당에게 경외감이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비익조(比翼鳥)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이며, 남녀나 부부 사이의 두터운 정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운명적인 사랑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말인가. 여자는 잠자는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서 만들었다는 얘기에 비해, 남자도 여자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의 반쪽임을 일컫는 이 비익조에 대한 얘기가 어쩐지 나는 좋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읊은 <장한가(長恨歌)>에서 비롯된 비익조에 대한 내용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도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가슴속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이 장한가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전설의 새인 비익조에 비유하여 읊은 시이다. 당나라 6대 왕인 ‘현종’이 ‘양귀비’에게 빠져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자 양귀비의 인척들이 정치를 쥐고 흔들었고, 인척의 횡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것이 ‘안사의 난’이다.
이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임금이 혹해서 나라가 어지러워도 모를 만한 뛰어난 미인)이라고도 한다. 양귀비가 어떤 여자 길래 현종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았을까?
오래 전에 민요 가수의 여왕이었던 김세레나 가수를 초청한 잔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새타령으로 유명했던 그 가수가 간드러지게 불렀던 노래 중에 “천하일색 양귀비도 시들으니 그만이라…” 고한 가사가 생각난다. 도대체 얼마나 미인이었길래 1300년 전에 태어난 당나라의 여인이 한국 유행가에도 그 이름이 등장할까?
양귀비가 누구냐 고 웹사이트에다 물으니, 성은 양(楊)이고 이름은 옥환(玉環)이며, ‘귀비’는 후궁의 순위를 나타내는 칭호라고 한다. 벽화 등 그림에서 유추해보면, 당시 미인의 표준으로 실제로는 풍만한 여성이었다.
또한, 재주가 뛰어나 비파를 비롯한 음악과 무용에 큰 재능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아들의 비였다. 즉 자신의 며느리인 양귀비와의 사랑에 눈이 멀게 된 것이다. 현명한 군주였던 그가 양귀비와의 사랑에 빠져 어지러운 정사를 펼치는 통에 막강했던 당나라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당나라의 운명이 망할 지경에 이르자 양귀비를 죽이라는 압박이 거세어졌고, 결국 양귀비는 자결한다. 꽃다운 나이에 비참하게 죽은 양귀비를 잊지 못한 현종은 늘 이 시를 읊조리며 그리워했다고 한다. 비익조의 유래에 관한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양귀비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도 더불어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랑했던 사람과 사별했거나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자신의 반쪽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비익조, 이 얼마나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에 얽힌 전설 속의 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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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희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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