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가을바람에//꽃잎 떨어져/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차창바람 서늘해/가을인가 했더니/그리움이더라...//그리움 이 녀석/와락 안았더니/눈물이더라//세월 안고/그리움의 눈물 흘렸더니/아~ 빛났던 사랑이더라’
햇살이 눈부시게 쪼개지는 이른 아침, 청랭한 맑은 공기를 욕심껏 폐에 채우며 산책에 나선다. 작자미상의 가을 시 한 편을 낭송하며 숲 속을 밟는다. 벌써 좁은 산책길에는 토실토실한 도토리가 떨어져서 다람쥐들을 즐겁게 하고, 곱게 단풍진 낙엽이 간간이 바람에 포물선을 그리며 유영한다.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사색한다.
가을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도시의 분주한 생활에서 벗어나서 계절의 감각을 찾아 공활한 하늘에 잠긴 산을 돌아보며 가을을 만끽해도 좋을 것 같다. 계절이 다른 색깔로 색칠한 익숙한 형상들의 새삼스러운 변화가 눈부시고 아름답다.
여름 내내 태양과 사귀며 천둥 몇 개씩이나 품은 열매들이 잎 떨군 가지에 알알이 가을을 꿰고 있으며 계곡의 물소리도 한층 맑고 청아하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가을은 보내는 계절이다. 알알이 추수하는 풍요의 계절이지만 또 비우고 내어주는 서글픈 계절이기도 하다. 인생은 자연 앞에 겸손하며 자연을 통해서 참된 삶의 철학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한 번 마음 맞는 친구들과 쉐난도 국립공원에라도 올라가서 투명한 햇살 아래 진홍빛 단풍위에 앉아 넓은 초장에 뛰노는 사슴들을 보며 하나님이 지으신 오묘하고 신비 무한한 자연의 심포닉 포엠(symphonic poem)에 취하며 자연에 파묻히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가을은 고향이다. 하늘 높이 줄을 지어 나는 기러기를 보고도, 동네 입구에 깎아 세운 이끼 낀 솟대에도, 까치밥으로 한 알 남겨둔 홍시에도 사뭇 고향생각이 울어나며 산 넘어 신기루를 좇아 가을동산에 어께동무 하여 헤매던 유년의 시절이 고향을 더 푸게 한다.
가을은 또 사색의 계절, 기다림의 계절이기도 하다. 소소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우울한 인생을 생각하며 그 누구에게서 올 것 같은 편지나 전화를 기다리며 창문을 건드리는 바람소리에 속아서 문을 열어보기도 한다.
가을이 가면 한 해가 거의 다 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 해 동안 내 삶에 이렇다 할 결실을 한 게 없다. 시 한편, 수필 한편 변변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래도 가을 시 한편을 써서 가을 누리를 아름답게 찬미하고자 하나 마음뿐이다.
국화는 가을의 대명사다. 국화의 진한 향기가 살랑거리는 바람에 실려 황금들녘을 지나 평화로운 어촌에 그물을 손질하는 구릿빛 어부에게도 가을을 전해주고 오막살이 담장에 담쟁이 넝쿨이 붉게 물든 넝쿨손을 뻗으며 진하게 타들어가는 것도 가을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가을이지만 이해의 가을은 더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 또 몇 번의 가을을 맞고 보낼런지? 백수의 늙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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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전시사관학교 워싱턴전우회장 /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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