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심란한 리뷰의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해 보았다. 1976년 이탈리아, 프랑스, 당시 서독이 합작해 만든 틴토 브라스 감독의 ‘살롱 키티’라는 영화로 예술 장르의 완성도를 말하기에 앞서 긴장감과 몰입도 그리고 내용이 시사하는바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준다.
나라 전체가 거의 나치즘에 감염되어 돌아가던 1939년 독일,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는 흑인, 유대인, 집시, 아시안, 신체장애인, 정신병자, 혼혈인을 비롯한 그 밖의 범죄자, 살인자 등 일부 비 게르만 인들을 열등 유전자로 분류하고 대량 살상한다. 이 광란의 소용돌이와는 상관없이 베를린 중심가 ‘살롱 키티’에서는 나치 제3국 최고위층을 상대로 음란 기괴한 매음이 이루어진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 따라 에로틱 전쟁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나는,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차치하고라도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는 자기 검열 기능조차 마비된 매음과 성행위에 방점을 찍은 감독의 의도에 의문을 품으며, 선과 악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을 휘두르는 실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깜깜한 밤 시간대 불과 몇 시간 만에 완전하고 화려하게 성장해버리는 독버섯처럼 영화 속 광기어린 집단상태가 국민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독버섯의 생리와 닮은 듯했다. 무삭제 적나라한 병적 에로티시즘을 표현하여, 보는 이의 건강한 성욕까지 빼앗아 버림으로써 감독의 의도는 성공한 듯 보인다.
영화는 피터 노든(Peter Norden)의 실화 소설 ‘마담 키티(Madam Kitty)’를 원본으로 각색되었다고 한다. ‘살롱 키티’는 실존했던 독일 최고급 매음굴로 1930년대 초부터 1939년까지 나치 친위대에 접수되어 친위대 소속 첩자들이 매음녀로 활동하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위해 복무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그때의 실화를 그린 것이다. 사상과는 상관없이 자유로운 성적 환상을 추구하던 살롱 키티의 마담 키티는 자신의 살롱이 나치에게 접수된 줄도 모르고 첩자들을 최고의 매음녀로 훈련시킨다.
살롱을 친위대 소속 스파이들로 채우고 자신의 야욕을 향해 질주하던 친위대장, 국가사회주의 열혈 추종자로 스파이가 되었다가 나치를 빠져나오는 이 등 세 사람의 인물을 통해 전쟁의 광기와 암운에서 결국 벗어나는 역사적 스토리이지만 영화는 키티의 환상을 좇은 비현실적이고 환각적인 살롱 운영과 날것 그대로 반응하는 고객들의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그 의미를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시선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고, 또한 끝까지 시선을 끌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를 벗어나 사람에게는 측은지심의 본능도 있고 문명 최상위 포식자로 살상하는 본능도 있다. 양축을 오가며 인간은 좋은 쪽으로 더 많이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우경화(혹은 좌경화), 반이민 정책, 백인우월주의를 비롯해 민족주의, 국수주의, 인종주의로의 회귀 현상들을 보며 집단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1세대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서 두려움을 느낀다. 낯선 동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봉변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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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아 샌틸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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