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아침. 가족들 챙기고 내 물건 챙기고 집을 나서며, 머릿 속으로는 이번 주말에 이웃과 함께 할 피크닉을 생각한다. 고기는 그 집 남편이 재어온다고 했고 난 반찬을 가져가기로 했지. 뭘 가져가기로 했더라? 그렇다, 지난 주에 담가놓은 열무가 냉장고에서 아삭하게 익어가고 있다. 또 뭘 챙길까. 컵과 접시, 숟가락, 젓가락. 마지막으로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이제 출발하려 차에 오르는데, 아차, 차 열쇠가 없다.
분명 아까 챙겼던 것 같은데. 열쇠 놓는 접시에도 없고 가방 속에도 주머니 속에도 안 보인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다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모든 서랍을 열어 보지만, 차 열쇠는 어디에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자기 직장으로 출발하는 남편을 붙잡아 간신히 출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동료의 차를 얻어 타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통 위에 차 열쇠가 놓여 있다. 아마도 열무를 확인하려 냉장고를 열어보다 그 위에 놓고 잊어버린 모양. 아침부터의 동동거림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다 난다. 내가 정신을 어디다 놓고 사는 거야. 신문광고라도 내야 하나보다. 집나간 정신을 찾습니다. 정신아, 어디 있니.
머리를 탓하거나 나이를 탓할 일이 아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너무 여러가지 생각을 한꺼번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기엔 나를 부르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신을 놓고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떠다니는 일이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리저리 떠다니는 잡생각들을 흘려보내고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과 내 마음상태에 어떠한 가치판단 없이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을 ‘마음 챙김’이라고 한다.
마음 챙김은 본질적으로 명상훈련과 맞닿아 있지만, 일상 속에서 마음 챙김을 연습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사실 설거지 같이 매일 하는 일을 하는 시간이다. 설거지는 얼마나 생각이 떠다니기 좋은 시간인가. 그릇을 씻으며 내일 반찬거리를 구상하고 아들한테 할 잔소리를 정리하며, 때로는 왜 이리 음식을 짜게 하냐는 남편의 투정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설거지가 끝난 후 어떤 사람은 곧바로 책상으로 가 방금 구상한 일거리를 정리하고, 어떤 사람은 남편에게 쏟아 부을 독한 말을 마음에 장전한다.
자, 씻을 그릇 위에 물을 틀면서 잠시 생각을 잠가보자. 우선 손 위에 떨어지는 물을 느껴보자. 차갑게 떨어지다가 차츰 올라가는 물의 온도를 느끼며 다음은 까끌한 스펀지를 적시고 적당량의 세제를 펌프 한다. 한번, 두번.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면 그릇 하나를 잡고 천천히 문질러 본다. 그릇의 질감, 무게, 색깔. 그릇에 새겨진 자잘한 무늬와 이가 나간 표면까지 눈과 손에 들어오는 감각을 받아들이며 귀에 들리는 부득부득 소리에 집중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그릇을 닦고 다시 물을 틀고 거품을 헹구며 달라진 그릇의 색깔과 느낌을 느낀다. 뽀드득 시원하게 씻긴 그릇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싱크를 닦고 행주와 스펀지를 삶아 소독을 끝낸다. 아, 닦인 것은 그릇이 아니라 내 마음인양 상쾌하고 시원하다.
뒷마당의 낙엽을 치우거나 직장으로 차를 몰면서도 똑같이 해보라. 지금에 집중하다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나 염려는 어느 정도 가라앉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면 내일을 위한 계획이나 일의 구상은 언제하냐고? 언제든 시간을 정해 이 역시 집중적으로 해내면 된다. 일단 익숙해지면, 직장일 생각하다 차고문 고치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것이 훨씬 능률이 오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703)76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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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상담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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