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4회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수상작
▶ ■ 수필부문 장려상
참 재미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에 나는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 이태리의 플로렌스를 여행하며 그 화려했던 이태리 르네상스 문화를 섭렵하겠다는 욕심에 이른 아침 줄을 서서 문 열자마자 들어 간 그 곳 미술관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이었습니다.
화가의 이름은 카라바지오였습니다. 자신의 원래 이름도 미켈란젤로였지만 자신보다 앞선 위대한 조각가이며 화가였던 미켈란젤로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이름 대신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이름인 ‘카라바지오’라 불리는 이태리의 또다른 천재 화가 중의 한명입니다.
‘ 의심하는 토마스’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죽었다고 믿었던 예수님이 제자인 토마스 앞에 나타나 자신이 부활한 예수이라는 것을 토마스에게 알리고 그를 믿게 하려하는 상황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을 보며 생각 했었습니다. 그림대로라면 토마스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의심스럽고 자신이 믿지 못했던 것을 이제 믿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당장 토마스 자신의 눈 앞에서 예수님이 직접 자기가 죽을 때 난 상처를 보여주고 손으로 만지게까지 하였으니 이쯤 되면 제 아무리 토마스라도 안 믿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카라바지오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한 상황 설정일테지만 말입니다.
나는 요즘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든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으니 힘든 일도 힘들지 않게 넘어 가곤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나에게 힘이 되어 줄수 있는 것도 우리 가족들이 서로 믿고 그것을 바탕하여 사랑으로 의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돌아보니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이곳 미국에 온 지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이쯤되면 미국이 내 삶의 터전이라 여기고 편안히 지내야할텐데 어쩐 일인지 항상 마음은 내가 자란 그 곳을 향해 있는 것 같아 나 스스로 안타깝고 불안하기도 했었습니다. 나이 많으신 어머니가 그립고 내 형제들이 보고싶어서 그러려니 위안도 해보지만 가끔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럴 때면 가끔 카라바지오의 이 그림이 다시 생각나곤 했었습니다. 뭔가 아닌것같고 의심스러울 때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깨우침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에서 일테지요. 내 손에 확실히 잡히지 않는 그 답이 그 그림 속의 토마스에게 처럼 확실히 다가올 수는 없을까하고요.
그러면서 그림을 다시 펼쳐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카라바지오가 진심으로 우리에게 하고픈 얘기가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카라바지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의심으로 가득찬 토마스에게서 의심보다는 믿음의 소중함을 강조하여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동안 쌓아온 시간들이 주는 믿음은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믿고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내 가족들과 함께하는 이 곳이 얼마나 소중하고 편안한 우리의 보금자리인지는 보지 않고 만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토마스의 손을 잡아끌어 자기의 상처에 대어보이는 예수의 손을 왜 카라바지오가 그림의 한 가운데 힘주어 그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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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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