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버지니아에서는 태풍이나 폭설이 올 때마다 큰 피해를 입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폭설이나 태풍 주위보가 뜨게 되면 몇 일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 생필품들이 동이 나기 시작하고, 평소엔 20-30분이면 충분히 오가던 거리는 폭설과 태풍으로 인한 사고들 때문에 최소한 2-3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태풍이 이곳에 도달하기 이전부터 버지니아에서 일상의 평온함은 빠르게 사라진다.
그런데 시카고에서 살다 온 본인같은 사람의 눈에는 이러한 광경이 아직도 생경하다. 사실 시카고가 여기보다 훨씬 많은 태풍과 폭설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그 쪽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이런 혹독한 날씨들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전임 대통령도 처음 백악관에 도착한 해 겨울, 이 유난한 ‘눈 내리는 날의 DC 풍경’에 많이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걸 보니, 이러한 버지니아의 겨울 풍경은 분명 조금 특이한 면이 있다.
홍수의 근본 원인은 너무 많이 내린 비가 아니라, 배수시설의 부족함
본인의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홍수의 근본 원인은 ‘너무 많이 내린 비’ 보다는, ‘부족한 배수 시설’에서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즉, 혹독한 환경이 홍수나 정전같은 피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부족한 대비와 안이한 대처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안이한 상황인식의 근본 원인은 아이러니 하게도 ‘너무도 혹독한 환경’이 아니라 ‘너무도 좋은 환경’이다.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시카고의 환경과 미국의 수도가 위치한 DC 근교의 버지니아 중 과연 어느 쪽의 환경이 더욱 혹독할까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이렇게 조금만 관점을 바꿔 바라보면 깨닫게 되는 이 ‘버지니아 사람들이 너무도 좋은 날씨 때문에 폭설과 태풍의 피해를 더 받게 되는’ 역설은 그대로 우리 몸에도 적용할 수 있다.
스트레스성 질환의 근본 원인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관점의 이상이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거의 매일 같이 보게 되는 두통, 불면증, 가슴 떨림, 안구 건조, 뒷목 통증, 소화 불량과 같은 증상들은 모두 심인성 질환들인데, 이 질환들의 공통점은 그 이면에 육체의 이상보다 심리적인 불안정함이 더 깊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다 보면, 생각보다 ‘진짜 나쁜 상황’에 처해 이러한 질병을 겪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우 적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힘들겠구나’ 싶을 상황에 처하신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러한 심인성 질환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이곳 버지니아의 날씨처럼 너무도 좋은 환경에서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오던 이들이, 아주 가끔씩 내리는 눈과 어쩌다 부는 바람을 감당 못해 심신을 망가뜨리는가 하면, 오히려 항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히려 큰 고난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아프지 않고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가는 힘이 있다.
밤이 어둡다고 불평하지 말고, 어두운 밤을 지새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지혜
밤이 어둡다고, 겨울이 춥다고, 겨울에 눈이 온다고 불평하는 사람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혹독한 외부 환경을 문제의 핵심으로 바라보는데, 이러한 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들이 ‘해결할 길이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밤을 밝게 만들고,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 눈이 오지 않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밤이 어두워지고, 겨울엔 눈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그러한 변화에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모든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눈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눈이 오지 않게 하려 노력하는 사람보다, 눈이 많이 오는 상황을 대비하는 이가 더욱 지혜로움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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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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