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는 공항만이 주는 설렘이 있다. 그곳에는 떠나고 보내는 안타까운 아쉬움이 있는가 하면 반가운 이를 맞이하는 기쁨과 환희가 있다. 하지만 때론 상식을 벗어나는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또한 공항이다.
얼마 전 애틀랜타에 가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중에 앞의 젊은 부부가 겨우 한 달 정도 된 딸을 바라보면서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대견해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행복한 순간을 엿 보면서 그동안40여년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 온 공항에서 있었던 특이한 만남의 장면이 떠올랐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함께 미국에 올 일이 있었다. 그 당시 H 아동복지회는 개인이 소정의 기부금을 내고 2-3명의 입양아를 미국에 데려다 주면 복지회에서 왕복 비행기 표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반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남편은 입양아를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3개월 된 여자아이와 5-6세 된 두 명의 남자아이를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양부모에게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장난감을 손에 지닌 남자아이들은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아는 듯이, 끊임없이 울어대는 여자아이를 달래느라 거의 비행 내내 서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그때는 이 세아이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세 아이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 것인 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여정 끝에 달라질 그들의 인생을 가늠하고 염려하기엔 나 자신이 어렸다.
긴 비행 끝에 도착한 시카고 오헤어 공항 대기실은 여러 가지 색깔의 풍선과 “Welcome Home” 이라 쓰인 현수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남자아이는 같은 가정으로 입양되었고 여자아이는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여자아이를 받아 안은 양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이라며 울면서 이렇게 큰 선물을 받게 된 것은 바로 기적이라 하였다. 두 남자아이의 손을 양쪽에 꼭 잡고 기뻐하는 양부모를 뒤로하고 남편과 나는 펜실베니아 주의 피치버그로 환승하기 위해 그들을 떠나왔다. 이런 새로운 가족의 끈이 이어지는 만남도 이루어 질 수 있는 곳이 공항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식 가진 부모로서 그때 일을 돌아보니 많은 생각이 오간다. 진정 그들은 미국을‘home’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을까? 피부색이 다르니 입양아임이 대번에 드러나서 왕따의 시절이 있었을텐데 그 힘든 시간을 어찌 이겨냈을까? 억지로 떠나 온 고국을 향한 그리움에 고개가 동쪽을 향해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어머니 나라 소식에 목말라 K-POP에 빠져있을까?
얼마 전 한국 가정에 입양된 지적 장애가 있는 폴란드 여자아이 - 김한나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았다. 폴란드 여인이 낙태를 목적으로 한국에 왔다가 출산한 지 사흘 만에 아이를 남겨 놓은 채 한국을 떠나 버렸다. 그 후 한나는 폴란드 가정과 러시아 가정에 번갈아가며 입양되어 길러지다가 4살 때 다시 한국 가정에 입양되어 한국 아이로 자라고 있는 그녀의 일상생활을 다룬 기록 프로그램이다. 파란 눈의 금발 소녀는 사람들이 영어로 말을 걸까 봐 두려워하며 방에 숨어있기도 한다. 사춘기가 된 한나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그리워하고 서서히 어머니 나라 폴란드에 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한나의 이야기를 시청하며 40여년 전 오헤라 공항에서 새 가족을 만났던 세 아이들도 잊고 지냈던 어머니 나라를 알고 싶어하리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들의 지난 간 40년이 양부모의 사랑속에서 평온했기를 바라며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비어있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찾아서 인천 공항에 왔으면 좋겠다. 사십 대의 여인이 처음 보는 초로의 여인을 부여잡고 “엄마”를 오열하는 곳. 이제는 모든 게 괜찮다고, 원망에 가득 찬 지나간 시간보다는 앞에 올 시간을 노래하는 희망을 갖고, 끊어졌던 가족의 끈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곳도 또한 공항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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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레지나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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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와닿는글,,,,잘읽엇습니다.
수필가도 아닌데 글 잘쓰네 앞으로도 자주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