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딸과 함께한 현재의 처토우 씨(왼쪽). <연합>

제시카 처토우 씨의 입양 전 모습. <연합>
“지금까지 제 미래를 위해 쏟았던 노력만큼 이제는 46년 전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 1973년 한국에서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입양한 제시카 처토우(입양기관이 지어준 한국명 안해련·46·여)씨가 낳아준 친부모를 애타게 찾고 있다.
처토우 씨가 홀트재단을 방문해 찾아낸 기록 등을 토대로 한국 중앙입양원에 보낸 사연에 따르면 그는 1973년 6월19일 새벽 4시, 경기도 안양시 안양리 820번지 황해여인숙 옆 골목길에서 한 노점 상인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생후 일주일 정도로 입양 기록에는 남아 있다. 탯줄 일부가 배꼽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침대보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홀트 재단에 인계돼 입양 가기 전까지 위탁가정에서 자랐다. 위탁모는 김옥순(1937년생)씨였고, 그의 남편은 당시 45세의 운전기사였다. 위탁 부모는 슬하에 두 아들(17살, 15살)과 딸(13살)을 두고 있었다.
미국 입양 당시 아기의 신발 등 여러 물품이 인계됐다. 위탁가정에서 전달한 것이다.
처토우 씨는 “친부모이면 좋겠지만 그분들이 나설 수 없다면 위탁 부모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며 “오늘날 제가 존재하고 현재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누구에게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생명과학·전염병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남편 대니얼 처토우와의 사이에 딸(10살)과 아들(6살)을 두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한국의 조상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친 외갓집의 뿌리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기 시작해 늦게나마 제 과거를 찾아 나서게 됐다”며 “친부모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입양을 선택한 것은 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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