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잘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얘기하지만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망설이게 되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친구가 카톡으로 보낸 ‘행복한 노년’ 이라는 동영상을 보다가 ‘존엄사 선언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언서라고 하면 왠지 ‘기미독립선언서’처럼 비장한 결단과 각오를 다짐하는 내용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나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불치의 병이 걸렸을 때나 사망의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는 경우를 대비해서 나의 가족과 친척 및 나를 치료하고 있는 의료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희망을 남긴다. 나의 병이 현재의 의학으로는 불치의 상태이고 이미 사망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된 경우에는 헛되게 사망 시기를 연장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거절한다. 내가 수개월에 걸쳐 이른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경우에는 일체의 생명 유지 조치를 취하지 않기를 원한다.”
문득 내가 만약 말기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생각해본다. 몇 년 전 악성 뇌종양을 앓았던 29살 미국인 브리터니 메이너드가 고통스런 연명 대신 약을 먹고 편안히 죽는 ‘존엄사’를 결정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녀는 심한 두통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뇌종양 진단과 함께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메이나드는 계속 발작에 시달렸으며 심각한 머리 및 목의 통증, 뇌졸중과 유사한 증상으로 고통스러워했다.
2012년 결혼한 메이너드는 2014년 남편의 생일(10월31일) 이튿날인 11월1일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먹고 남편과 부모,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 그녀의 동영상을 통해서 죽기 전에 가보고 싶어 했던 그랜드캐니언에 가서 어머니와 같이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보니 너무 젊고 아름다워서 처연했다. 메이너드는 죽기 전에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친구들과 가족에게 인사를 보낸다. 삶을 반추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놓치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는 “자기 죽음에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집보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더 흔하게 됐다. 한 개인의 평생 의료비 중 약 25%가 죽기 마지막 1년, 그리고 20%가 사망 직전에 쓰인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연장치료를 통하여 말기환자의 고통과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당사자의 뜻이 반영된다는 것은 생명경시가 아니라 생명존중이다”고 피력했다.
위와 같이 식물인간을 둘러싸고 그 육체적 생명을 우선하는 기준과 정신적 생명을 우선하는 기준이 서로 마찰을 빚은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불치의 병으로 내가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존엄사 선언서를 작성하리라. 인공적 생명연장 장치에 의존해 항생제를 투여 받으며 ‘의미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뇌사(腦死) 즉, 뇌가 죽었다는 것은 한 인간의 인간적, 정신적, 인격적 기능이 소멸됐다는 뜻으로 그 때부터는 ‘식물인간’이 되는 것이다. 호흡, 순환, 소화, 배설 등의 육신적 기능은 의료보조기기 등으로 유지되지만 사고(思考-생각), 운동, 지각 등 대뇌기능이 상실되어 의식불명인 채 살아있는 사람이 바로 ‘식물인간’이다. 정신은 죽고 몸만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도 갖가지 인공적인 생명연장 장치에 의해 호흡만 지속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신이 떠난 육체는 사람으로서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생명으로서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온몸에 주사바늘과 의료기기들을 주렁주렁 달고 의식도 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한다면 그걸 어찌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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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희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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